생각의 편린들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을'.. 자영업자

새 날 2015. 3. 2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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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몬의 '알바도 갑이다' 광고에 출연했던 '혜리'에게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의 취지를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며 감사패를 수여했단다.  '국민 애교'로 떠오른 '혜리'는 충분히 감사 받을 만한 공헌을 했고, 때문에 난 그녀의 수상을 축하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감사패를 준 고용노동부는 영 밉상으로 다가온다.  왜냐면 그들은 정작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채 남들이 애써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으면서 모든 생색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혜리의 수상 소식은 얼마 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알바몬 광고 논란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물론 당시 논란은 청년층인 아르바이트생들의 압승으로 끝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다수의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이른바 여론 주도층 역시 겉으로 드러난 약자인 아르바이트 쪽으로 균형추가 심하게 기울었기 때문일 테다.  악덕업주로 매도당했던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은 대세에 밀려 이내 묻히고 만다.  졸지에 공공의 적이 돼버린 것이다.  

 

알바몬 논란은 아르바이트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을'이라 알리고 있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을'의 위치에 놓인 계층은 오히려 청년층의 만만한 대상으로 전락한 자영업자가 아닐까 싶다.  알바몬 사태로 인해 졸지에 악덕업주로 몰린 자영업자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경제적 처지만큼 어느새 청년들에 의해 희화화되거나 비아냥 그리고 묵은 감정의 배설 대상으로 쇠락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논란 이전에도 자영업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은 극히 낮았던 게 엄연한 현실이다.  아마도 만만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확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자영업자수는 지난해 기준 565만2000명에 이른다.  5명 중 4명은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이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우리 경제에서 자영업자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부지기수인 데다 전체 근로자수 대비 자영업자 비율마저 역대 최저로 떨어졌고, 임금근로자들에 비해 소득은 턱 없이 적으며 빚은 훨씬 많다.  전경련의 조사에 따르면 40대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은 같은 연령대 임금근로자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기준 임금근로자 평균 소득은 5170만원인데 반해, 자영업자는 2725만원에 불과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해가 갈수록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마치 시한폭탄마냥 불안불안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왜 중장년층은 자영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걸까?  40대만 되어도 직장에서 쫓겨나기 일쑤인 고용 불안 상황에서 중장년층 일자리는 태부족이니 어쩔 수 없이 자영업 전선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이는 근래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들더러 중동 가라고 한 발언으로부터 촉발된 청년 취업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자영업을 하고 싶어 선택했다기보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등 떠밀려 하게 된 경우가 다반사일 테다.  청년들이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상황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에게 아르바이트 임금 줄 돈 없으면 혼자서 운영하라거나 아예 사업을 하지 말라는 비아냥은 상처난 부위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사회 일각에선 자영업자 구조조정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를 위한 선결 요건이 제대로 갖춰지기엔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어느 한 가지 문제의 해결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단순한 상황이 아니기에 시한폭탄과도 같은 자영업자를 둘러싼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중장년층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추적인 연령층인 데다 각자의 가정을 짊어진 가장들이 태반이기에 청년실업보다 더욱 큰 문제로 와닿는다.  이런 상황에서 뾰족한 대책조차 없이 청년들더러 중동으로 가라고 한 무책임한 발언이나 도대체 그토록 힘들다고 하는 자영업을 왜 해야 하는 건지, 그도 아닐 경우 툭하면 튀어나오는 자영업자 구조조정 논란은 결국 궤를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가 없어 아르바이트로 내몰리고 있는 청년층이나 중장년층의 자영업자 모두 절박한 경제적 상황이 빚어낸 '을'의 신분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바몬 사태에서처럼 유독 청년들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던 건, 희화화될 정도로 자영업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별로 곱지 못한 데다, 청년층에 비해 중장년층의 인터넷 활용도가 월등히 뒤처지다 보니 온라인 전체의 목소리를 청년층이 주도하여 빚어지게 된 결과물일 테다.  물론 을과 을의 전쟁을 교묘히 부추긴 언론 또한 무시 못할 요인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가 혜리에게 감사패를 수여한 건, 평소 자신들의 할 일을 대신 해준 데에 대한 말그대로 감사의 표현일 테지만, 이는 당시 알바몬 광고로 촉발된 최저시급 등의 아르바이트 착취 논란을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끌어올린 채 자영업자들을 난도질하는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기에 그다지 달갑지 않게 다가온다.  즉 자신들의 직무 태만을 감사패 하나로 덮으려는 취지로 읽히고, '을'의 처지에 놓인 청년층과 자영업자들을 다시금 은근슬쩍 대결의 전선으로 내몰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더욱 괘씸한 건 오늘날 알바몬 사태와 같은 논란이 빚어지게 된 보다 근본적인 배경엔 청년층과 자영업자의 다수를 이루는 중장년층 일자리 부족이 차지하고 있건만, 이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기보다 또 다시 을과 을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고용노동부가 할 일은 을과 을의 싸움을 붙이는 게 아닌,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을들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  때문에 난 혜리의 감사패 수상이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뒷 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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