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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테이션 게임> 전인미답의 원천은 '사랑'이다

새 날 2015. 3. 5.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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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엔 스포일러가 포함됐을 수 있으니 읽는 분의 주의를 요하는 바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얼까?  앨런 튜링이 남긴 획기적인 성과?  하지만 감독이 그러한 뻔한 내용을 읊기 위해 이렇듯 어렵사리 영화로 만들었을 리는 절대로 없었을 것 같다.  왜냐면 우리는 현재 온라인 검색 한 번이면 원하는 정보가 줄줄이 튀어나오는 스마트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감독은 앨런 튜링의 애틋한 사랑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때문에 이 영화는 단언컨대 로맨스 장르라 말할 수 있다.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 남긴 위대한 족적의 근원을 살펴보기 위해선 반드시 그의 청소년기 시절을 되짚어볼 필요성이 엿보인다.  예측했던 대로 청소년기 앨런 튜링의 행동은 남달랐던 것으로 읽힌다.  범인이 아닌 영특한 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곤 하는 타고난 집중력 덕분에 또래들과는 달리 매우 독특한 행동 패턴을 보였던 그다.  인권이 많이 개선된 지금도 여전하지만.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2차 세계대전 즈음엔 분명 다름을 인정치 못하는 또래들이 보다 다수를 이루었을 테고, 평범한 자신들과 조금은 달랐던 그를 그냥 놔둘 리 만무했다. 

 

그렇게 집단 따돌림에 늘 괴롭힘마저 당해오던 앨런 튜링에겐 친구다운 친구가 딱히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여지없이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앨런에게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뻗어왔다.  크리스토퍼라 불리는 친구였다.  그날 이후 둘 사이는 무척 가까워졌으며, 영특했던 두 사람은 서로 1, 2등을 견줄 만큼 출중한 실력을 갖춰나갔다.

 

사실 앨런의 크리스토퍼를 향한 감정은 친구 이상이었다.  동성이었음에도 이성과 같은 존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실 사랑의 감정이란 이성(理性)과 논리로부터 벗어난, 자연스러운 끌림 현상 중 하나일 테다.  크리스토퍼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던 어느 날 앨런은 '사랑한다'라는 메시지를 그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그가 사고를 당해 그만 죽었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가까운 훗날 성인이 된 앨런 튜링의 여전한 천재적인 수학적 능력은 대학 강단에서 발휘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그는 독일군의 암호체계였던 '에니그마'의 해독을 담당하는 특수 프로젝트 팀에 가담하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에니그마 해독 기계를 제작하는데, 그 이름은 공교롭게도 앨런의 첫사랑이었던 '크리스토퍼'였다.  기계에 온갖 애정을 쏟아부으며 아련한 첫사랑의 상대였던 크리스토퍼를 부활시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던 앨런이다.  모든 시간을 크리스토퍼에 매달리다시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의 크리스토퍼를 향한 애틋한 감정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의 완성된 모습을 보는 데엔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돼야만 했다.  수개월이 지나도 성과가 나오지 않자 상부에선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며 크리스토퍼를 부수고 그를 해고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동료들의 만류 덕분에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게 된 앨런이다.  물론 그의 크리스토퍼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던 터라 이러한 결과에 대해 거의 발작 증상마저 보이고 있었다.



만에 하나 앨런이 평소 동료들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더라면, 아마도 지금 이 글을 쓰게끔 하고 있는 컴퓨터라 불리는 도구는 결코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앨런의 괴팍한 성격은 청소년기 시절부터 또래들과 어울리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러한 성격은 변함이 없었다.  분명한 건 그가 아무리 뛰어난 두뇌를 소유하고 있더라도 혼자만의 능력으로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했으리란 사실이다. 

 

 

다행히 그와 지향점이 다소 비슷했던 약혼녀 존 클락(키이라 나이틀리)이 앨런의 성격을 다소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앨런이 팀원들에게 예전과 같이 여전히 독불장군처럼 행동했더라면 아마도 그의 연인 크리스토퍼는 부활은커녕 산산조각났을 가능성이 높다.  존 클락 때문에 팀원들에게 조금씩 다가갔던 앨런, 덕분에 팀원들 역시 그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주었으며, 이는 그가 크리스토퍼의 완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매달릴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된다.

 

앨런이 그토록 에니그마의 해독에 몰두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기본적으로 그의 뛰어난 두뇌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긴 하겠지만, 바로 청소년기 그의 아련한 첫사랑의 상대였던 '크리스토퍼'였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즉 사랑의 힘이다.  지금도 동성애는 많은 이들에게 있어 혐오의 대상이며, 배척당하는 입장이다.  그나마 과거에 비하면 인권 신장 덕분에 여건이 많이 향상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동성애는 처벌을 받아야 될 정도의 범법행위로 엄히 다스려지고 있었다. 

 

앨런은 어느 날 자신보다 어린 남성과의 육체적 관계가 들통나는 바람에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약물 주입을 통한 화학적 거세형의 처벌을 받은 그는 아무도 이루지 못한 성과의 원천이었던 사랑의 힘을 강제로 빼앗기게 되자 점차 기력을 잃어간다.  사랑이라는 형이상학적 감정에 대해 형벌로써 강제로 다스려지는 만행을 몸소 겪음으로써 삶의 목표나 의지 따위를 한 순간에 상실한 탓이다.  

 

결국 이 영화에선 단순히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위대한 업적을 말하기보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때로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전인미답의 원천은, 다름아닌 '사랑'이라 말하고 싶었음이 틀림없다.  물론 여기서의 사랑은 이성애이거나 동성애 따위의 구별이 없는, 순수한 성적(性的) 자기 결정권에 따르는 그러한 것일 테다.

 

 

감독  모튼 틸덤

 

* 이미지 출처 : 다음(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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