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은 과연 누구 편인가

새 날 2015. 2. 1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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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을 위해 설립된 인권전담 독립 국가기관이다.  지난 2001년 출범했다.  이러한 인권위가 최근 정부의 탈북자단체 대북전단 살포 저지 움직임에 대해 이는 표현의 자유 제한 영역에 해당되기에 막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지난달 말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11명의 위원 중 8명이 해당 의견에 찬성하였는데, 이들은 "민간단체나 개인의 대북 전단 활동은 세계인권선언 및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북한이 물리적 타격을 가하겠다고 협박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개인의 행위를 제지하는 것은 부당한 요구에 부응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북한 위협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인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물론 그 대상이 탈북자단체이든 그렇지 않든, 그 누가 되었든 표현의 자유가 침해 당하여선 안 된다는 인권위의 주장은 분명 옳은 말이다.  표현의 자유란 보편적인 기본권으로써 응당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간의 인권위의 행동엔 일관성이 결여된 터라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작 관심을 표명해야 할 중요한 표현의 자유에 대해선 그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해 오더니, 왜 하필이면 대북전단 문제에만 유독 관심을 보이고 있는 건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례로 현병철 위원장 체제 이후인 지난 2009년 12월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2010년 4월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등 인권위는 표현의 자유 침해와 관련한 안건을 잇따라 부결시킨 바 있다.  가장 비근한 예로는 지난해 10월 한 시민단체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풍선을 날리려다 경찰의 제지로 무산된 적이 있는데, 엄연히 대북전단과 같은 종류의 전단 살포에 관한 사안이었지만 해당 건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했던 인권위다.

 

아울러 북한의 위협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을 만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아니라는 인권위의 말엔 절대로 동의할 수가 없다.  북한은 수 차례에 걸쳐 물리적 타격을 천명해 온 데다 지난해 10월 대북전단 풍선을 향해 실제로 실탄사격을 가해온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인근 주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질린 채 긴급 대피해야 했으며, 비슷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실질적인 북한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해야만 했다.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 시마다 군사적 보복대응을 천명해 오고 있는 와중이다.

 

ⓒ노컷뉴스

 

이러한 상황이 현존하는 위험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경우를 실질적인 위험으로 간주할 텐가.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일, 물론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는 일보다 더 중요할 순 없다.  이는 법원에서조차 인정한 바다.  지난달 6일 의정부지방법원은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어긋나지 않은 적법한 행동이라고 판결했다.  한 탈북자가 대북전단 활동 방해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대북전단 살포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신체가 급박한 위협에 놓이고, 이는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하며 이를 기각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모든 보편적인 기본권도 결국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어야 가능해지는 권리 아니겠는가.   

 

인권위는 지난해 3월과 11월 국가인권기구(ICC)로부터 연거푸 등급보류 판정을 받으며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한 바 있다.  뿐만 아니다.  우리 정부는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로부터 인권 개선 노력을 지속적으로 촉구받고 있으며, 프리덤하우스가 평가하는 우리의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갈수록 퇴행하고 있다.  인권 신장은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와중이다.  오늘날 인권위의 행태를 감안한다면 이러한 결과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권위의 인권은 과연 누구 편인가?  권력의 입맛에 맞추고 정치적 색깔을 덧씌운 인권은 이미 인권이라 칭할 수 없다.  인권위의 존재 이유인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과도 애초 거리가 먼 일일 테다.  인권위의 역주행은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쳐 최악의 경우 한반도의 평화마저 위협할 만큼 파괴적이며 위태롭기까지 하다.  인권을 한낱 도구화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되레 인권위가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하고 나섰어야 함이 옳다.  스스로 독립성을 걷어찬 채 권력 바라보기만을 하며 정치적인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면 인권위의 존재 가치는 갈수록 옅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모든 이들에게 불행한 결과가 될 테다.  적잖이 실망스럽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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