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미국 교과서까지 넘보는 일본의 역사왜곡 행위

새 날 2015. 2. 9.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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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총리의 역사왜곡 시도가 점입가경이다.  자국의 역사 교과서뿐 아니라 이젠 타국의 교과서까지 넘보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달 29일 일본 중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아베는 미국 맥그로힐 출판사가 펴낸 교과서에 대해 "일본군이 최대 20만명에 달하는 14-20세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 모집 징용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어 경악스러웠다.  정정해야 할 것을 국제사회에서 바로잡지 않아 이런 결과를 낳았다"며 해당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물론 자국의 역사가 잘못 기재돼 있다면 해당 국가로 하여금 그의 수정을 요구하는 건 얼마든 가능한 일일 테다.  다만 그도 정당성이 담보되었을 때의 얘기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역풍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일 테다.  당장 맥그로힐출판사는 아베가 언급했던 다음날 논평을 내고 일본 정부를 맹비난했다.  "일본 정부가 최근 세계사 교과서에 실린 위안부 내용을 수정해 달라고 접근해 왔다.  그러나 학자들은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 그리고 교과서 저자들의 저술 연구, 표현을 명백히 지지한다"


뿐만 아니다.  미국역사협회(AHA) 소속의 내로라하는 미국의 역사학자 19명이 지난 5일(현지시간) 일본 정부의 비뚤어진 역사 인식을 통렬히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반인륜적 전쟁범죄인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역사의 시침을 거꾸로 돌리려 시도하는 천인공노할 일본에 다음과 같은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성 착취의 야만적 시스템 하에서 고통을 겪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일본과 다른 국가의 역사교과서 기술을 억압하려는 최근의 시도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교과서의 몇 단락을 삭제해 달라는 일본 정부의 매우 이례적인 요구에 강하게 반대한다.  우리는 과거에서 배우기 위해 역사를 가르치고 또 만들어가고 있다.  국가나 특정 이익단체가 정치적 목적으로 출판사나 역사학자들에게 연구결과를 바꾸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일을 반대한다" 

 

이들은 우선 사실관계 측면에서 볼 때 아베 총리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즉 위안부 강제 동원 등 일본이 문제 삼아온 내용에 대해 이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 역사학자들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관계보다 더 큰 우려를 표명했던 대목은 다름아닌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과거사 왜곡을 강요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연합뉴스TV 방송화면 캡쳐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미국 역사학자들의 이러한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무언가 느끼는 바라도 있는 걸까?  일본 내 양심있는 일부 지식인들이 일본의 우경화 바람과 역사왜곡 시도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며 비판했던 사례는 간혹 있어 왔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적은 미국의 입장인 데다 한일 양국의 역사논쟁에 대해 대체로 중립적 자세를 보여 온 측면, 아울러 그동안 역사왜곡 시도를 특별히 비난하고 나선 전례가 없었던 만큼 미국 역사학자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일 간의 과거사 갈등이 가급적 매끄럽게 매듭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때문에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아베 정부에 주변국이 납득할 수 있는 반성과 진정성 있는 사과 표명을 시종 압박해 왔던 미국이다.  그러나 아베는 외려 종전 70주년 즈음 발표할 자신의 담화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반성하는 표현을 넣지 않겠노라는 호기를 부리고 있다.  지난달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주년을 맞아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유대인 학살에 대해 거듭 고개 숙여 사죄하며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항구적인 책임"이라고 말했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행보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우리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말로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과 상처를 안겨 준 반인륜적인 역사적 사실마저 극구 부인하고 있다.  아울러 식민지배와 전쟁범죄의 과거를 미화하거나 부정하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헌법을 뜯어고쳐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와중이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지속적인 역사왜곡을 시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관계의 회복을 논한다는 건 결국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일본은 애써 모른 척 일부러 간과하고 싶겠지만, 왜곡한다고 하여 달라질 역사였다면 피해 당사국뿐 아니라 여타 국가의 역사학자까지 이렇게 직접 나설 일은 아마 애시당초 발생하지도 않았을 테다. 

 

결국 미국 역사학자들의 이번 성명은 일본의 비뚤어진 역사 인식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식과는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보인 셈이며, 피해 당사자인 우리를 비롯한 주변국들뿐 아니라 제3자적 입장에 놓인 국가에까지 일본의 망동에 대한 관심의 지평을 크게 넓혔다는 측면에서 우리에겐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될수록 일본의 입장은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본 스스로 직시해야 할 테다.

 

털끝만큼의 반성 기미조차 없는 일본 정부는 인류의 보편적 인식에 반하는 역사왜곡 행위를 지금이라도 당장 중단해야 함이 옳다.  아울러 기회가 닿을 때마다 잘못된 역사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하는 독일 메르켈 총리를 바라보면서도 애써 못 본 척 엉뚱한 짓만 일삼고 있는 아베 정권은, 과거를 배우기 위해 역사를 가르치고 만들어간다는 미국 역사학자들의 따끔한 일침을 그저 흘려듣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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