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알바몬 광고가 불편한 이유

새 날 2015. 2. 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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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부터 방송을 타기 시작한,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이 제작한 '알바가 갑이다' 광고 시리즈가 연일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인기 아이돌 그룹 '걸스데이' 멤버 '혜리'를 앞세운 덕분에 젊은층으로부터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안티라곤 전혀 없을 것만 같은 귀요미 '혜리'가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광고가 모든 계층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눈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용주의 입장과 아르바이트생의 입장, 두 부류의 반응이 확연하게 엇갈리고 있는 양상이다. 

 

우선 을의 입장인 '미생' 아르바이트생들에겐 무척이나 고무적인 광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마땅히 하소연할 곳 없던 전국의 500만 아르바이트생들 입장에선 통쾌하다는 반응 일색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응당 국가에서 해야 할 공익 광고를 사기업에서 대신하는 셈이라며, 고용주들이 이 광고를 통해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반응마저 내비치고 있다.  한결 같이 알바몬의 속시원한 행동에 엄지 손가락을 한껏 치켜세운다.


반면 자영업자들의 심기는 단단히 틀어졌다.  PC방 업주들의 이익단체인 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은 알바몬에 광고 중단과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해당 광고에는 자영업자 전체가 마치 최저임금과 야간수당을 지키지 않는 악덕 고용주로 오해하도록 만드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 분노와 상실감을 주고 있다는 게 그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분노를 삭이지 못한 일부 업주들은 알바몬 사이트 탈퇴운동을 벌이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영업자들의 이러한 단체 행동은 되레 아르바이트생들을 더욱 자극시킨 꼴이 돼버렸다.  알바몬을 탈퇴한 업주들은 스스로 악덕업주임을 커밍아웃한 셈이니 이들의 목록을 작성한 뒤 이를 대대적으로 공개하여 다시는 이땅에서 부당한 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데엔 그동안 고용주들의 수많은 부당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딱히 하소연할 데가 마땅치 않아 스스로 감내해 왔던, 업계의 오랜 관행 탓이 클 테다.  그만큼 개인 사업자들에겐 여전히 노동관계법 준수가 미흡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알바몬이 비뚤어진 관행을 올바르게 잡을 수 있도록 광고를 통해 이를 계도했고, 아울러 억뉼려 있던 아르바이트생들의 분노가 이를 기화로 일시에 분출된 셈이니, 우리 사회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고 봐도 일견 무방할 듯싶다.

 

그런데 젊은이들의 분노가 일시에 분출된 것까지는 좋으나 약간은 과도한 측면이 엿보이는 데다 갈등 양상마저 드러나는 듯해 우려스럽다.  그들 중 일부는 법을 잘 준수하고 있다면 자영업자들이 발끈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라 말하곤 한다.  물론 결코 틀린 말은 아닐 테다.  하지만 모든 자영업자들이 범법자는 아닐진대, 너무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건 아닐까 싶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며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의견으로부터 벗어난 논지를 펴려고 하면 이를 철저하게 배척시킬 만큼 일방적인 의견이 대세다.  논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다.  평소 그들 스스로를 합리적인 세력이라 칭해왔던 터라 이러한 분위기는 제법 낯설게 다가온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688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2000년 779만 명에 달하던 자영업자 수는 한 해 100만명 가까이 폐업하며 급감하는 추세다.  이로 인해 창업자 수 보다 폐업자 수가 8만 명 더 많은 역전현상마저 발생하고 있다.  경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자영업자를 원망하는 젊은이들 중 그들의 부모 역시 자영업자로 몸담고 있는 수가 부지기수일 듯싶다.  때문에 500만명이라는 아르바이트생들이 700만명에 이르는 자영업자를 원망하는 모습은 마치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를 원망하는 최근의 세태와 닮아있다.



젊은 청춘들의 호기어린 반응처럼 자영업자들의 반발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꼴로 비칠 수도 있을 테고, 심지어 최저임금도 줄 능력이 안 되면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표현 또한 백 번 옳은 말이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줄 돈이 아까우면 직접 일하면 된다는 쓴 소리조차 결코 틀린 말은 아닐 테다.  실제 아르바이트 생활을 경험해 보았을 청춘들의 일침은 그동안 업계 전반에 부당한 처우가 만연돼 왔음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알바몬의 광고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는 워낙 광고 속에 잘 녹여낸 터라 이해하기가 쉽다.  알바몬의 주장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 일부 아르바이트생들을 위해, 아니 대다수 아르바이트생들을 위해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주장을 담아내고 또 근로 환경이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취지라 해도 광고 자체가 일반인들에게 다소 불편하게 와닿는다면 그 자체로 문제 아닐까 싶다.  일례로 광고 속 '혜리'가 최저임금을 읊으면서 '이런 시급'이라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누가 보더라도 욕설을 연상시킨다.  아무리 옳고 정당한 일이라 해도 수단과 방법이 잘못됐다면 우린 이를 올바른 결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다소 선동적으로 비치기까지 한 이 광고 한 편 때문에 마치 모든 자영업자들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기라도 하는 양 네티즌들은 마녀사냥 벌이듯 고용주들을 구석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물론 아르바이트생들이나 네티즌들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면 그동안 부당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이를 옳게 따지지 못하고 눈물을 몰래 훔친 채 아르바이트에 몸담아왔다는 게 전부일 테다.  결국 광고 한 편이 뜬금없이 이러한 갈등을 유발한 셈이다.  흔히들 만만한 아르바이트생이라 표현하지만, 적어도 해당 광고 속에서의 자영업자 역시 만만한 대상으로 읽힌다.  결과적으로 해당 광고가 젊은이들의 분노 표출 대상을 제법 만만한 자영업자에게로 옮겨놓은 셈이다.

 

알바몬의 광고가 한 번쯤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을 이땅의 청춘들에겐 큰 호응을 불러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뜩이나 갑질 논란으로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에 선동적이며 저급해 보이기까지 한 광고를 통해 굳이 유발하지 않아도 될 또 다른 갈등을 애써 조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못내 씁쓸하다.  자영업계 전반에 부당한 관행이 팽배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고용주들이 악덕업주가 아니라는 점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때문에 이번 알바몬 광고에선 이러한 배려가 결여된 듯하여 내심 아쉽고 불편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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