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박 대통령의 '골프' 관련 발언이 씁쓸한 이유

새 날 2015. 2. 4.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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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상인들은 손님이 없어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들 역시 난생 처음 겪는 불경기라며 연신 하소연하기 바쁩니다.  경기 불황 신호는 여러 곳에서 읽힙니다.  지난달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량으로 현대자동차의 '포터'가 1위에 등극했다고 합니다.  1월 한 달 간 총 8860대가 팔리면서 생계형 서민트럭이 새해 첫 베스트셀링카로 꼽힌 것입니다.  이는 지속되는 경기불황으로 소규모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아울러 육아와 관련한 시장만큼은 흔히 불황이 없다고들 합니다만, 요즘 같아선 이러한 공식마저 깨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아이에게 쓰는 돈도 아끼기 위해 중고품을 찾는 부모들이 부쩍 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추세는 중고 제품 판매의 눈에 띠는 증가세로 나타나고 있으며, 반면에 새 제품 판매는 정체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우리의 월급만 빼고 공공요금을 비롯한 대다수의 서비스 및 제품 요금이 줄줄이 오를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연초에 오른 담뱃값은 서민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한껏 높이더니 이참에 끊겠다던 담배마저 차마 끊지 못하게 만들고 외려 줄담배만 연신 피우게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기업이나 부자에겐 세금을 감면해 주고, 반대로 만만한 서민들에겐 증세를 통해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려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봉급 생활자들의 유리지갑을 노린 연말정산 논란과 불합리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백지화라는 정책 혼선 따위를 연신 연출해 주는 정부 탓에 이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만큼 힘이 들 지경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씀 하셨더군요.  이 발언은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3일 포털과 각종 커뮤니티 등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다름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골프 활성화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다지 특별할 것 같지도 않은 이 단순 발언 하나에 네티즌들은 왜 그토록 열광(?)했던 것일까요? 

 

 

우리나라엔 골프장이 545개에 이르고 골프인구도 270만명에 달해 사실상 고급 스포츠 차원을 넘어 대중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골프장 매출은 지난해 기준 연 3조3900억원에 달하며, 용품과 의류 등 연관산업을 포함하면 20조원 안팎의 산업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전후방효과를 고려한다면 경제적 효과가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예 맞습니다.  주변에서 골프를 즐기는 분들을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골프가 예전에 비해 이젠 제법 대중화 단계로 접어든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골프란 스포츠는 그 특성상 경제적으로나 정신적, 그리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으면 즐기기가 어렵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대다수의 서민들은 밥 벌어 먹고 사는 일조차 어려울 만큼 힘든 시기를 감내하고 있는 와중입니다.  일부에겐 대중화되었다는 골프,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서민들에겐 다가가기 어려운 고급 스포츠에 불과할 뿐입니다.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인 측면도 무시 못합니다.  골프라는 운동엔 접대 등 온갖 비리의 온상 내지 매개라는 인식이 여전합니다.  오죽하면 정부에서조차 툭하면 공직자들에게 골프 금지령이 내려지곤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서민들에겐 너무도 힘든 와중인데, 정부는 정책적으로 서민들을 더욱 옥죄어 오거나 혼선을 빚으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고, 그의 수장은 뜬금없이 골프 얘기를 꺼내들었으니 네티즌들이 황당해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현실 상황과는 너무도 생뚱맞은 발언으로 국민들의 화를 제대로 돋운 셈입니다.

 

ⓒ뉴시스

 

그렇지만 이 또한 괜찮습니다.  다 좋습니다.  현재의 분위기를 떠나 어쨌든 골프의 활성화를 통해 소비가 되살아나고 이로써 경기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게 한다면 이를 마다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소 생뚱맞으며 상황과는 어울릴 법한 발언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는 받아줄 아량이 우리 국민들에겐 차고도 넘칠 만큼 충분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골프 발언 자체보다 저를 더욱 답답하게 했던 건 바로 이겁니다.  박 대통령이 골프 활성화 관련 지시를 하게 된 배경엔 주변으로부터 골프 활성화에 힘써달라는 건의를 여러 차례 받았노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작 서민들의 삶과 밀접한 아우성에 대해선 귀를 닫은 채 나몰라라 해왔으면서 불요불급한 골프 관련 사항에 대해선 즉각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저를 아연실색케 한 것입니다.  여전히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예의 그 패턴입니다.

 

가장 비근한 예로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들이 단식농성을 벌여가며 대통령과의 만남을 그토록 애원했건만 대통령은 냉혹할 만큼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습니다.  이런 분이 골프 금지령을 없애달라는 각료나 고위 공무원들의 하소연엔 득달 같이 화답하고 나선 것입니다.  대통령은 소통이 부족하다는 주변에서의 시선을 의식이라도 한 듯 최근 청와대 내에 특보단을 만들고, 하지 않던 티타임까지 가지며 나름 이를 불식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서민들의 삶 그리고 민생은 외면하고 있는 듯한 그분의 행보에 씁쓸한 마음 지울 길 없습니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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