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건강보험료 개선 백지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새 날 2015. 1. 3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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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려던 계획을 돌연 중단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석연치 않다.  청와대는 이같은 결정이 전적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의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을 만큼 의문 투성이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자 주요 국정과제였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지난 2013년 학계와 연구기관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건강보험 개선기획단이 꾸려졌으며, 이후 수년에 걸쳐 논의가 이뤄져왔고 드디어 그 결과물이 발표되던 찰나였는데 이를 하루아침에 백지화한 셈이니 이러한 중차대한 결정을 청와대의 승인이나 지시없이 복지부 장관 단독으로 했으리란 건 결국 어불성설에 불과한 일일 테다.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퇴임시 앞으로 자신은 연 2000만원에 달하는 연금소득과 강남의 아파트 등 많은 재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가입자인 아내나 자녀의 피부양자로 전환되면서 건보료를 내지 않게 된다며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의 모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렇듯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가장 형평성에 어긋나는 정책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놓고 있는 와중이다.



현재 건보료는 직장가입자의 경우 소득에 따라 부과되지만, 지역가입자는 소득 파악률이 낮다는 이유 때문에 자동차를 포함한 재산에 부과돼 상대적으로 부담이 더 큰 편이다.  즉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는 일정한 요건만 충족되면 소득과 재산이 상당하더라도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반면 직장이 없는 지역가입자는 상대적으로 더 높은 보험료를 내야만 하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간 격차가 큰 불합리한 구조다. 

 

가장 단적인 예로 지난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끝내 자살한 송파 세 모녀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변변한 소득 하나 없었지만 월 건강보험료가 5만원을 넘었다고 한다.  반면 직장가입자의 가족은 이자 및 배당소득 4000만원 이하 등 일정 기준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피부양자로 등재돼 얼마든 무임승차가 가능해진다.  그러다보니 건강보험 재정도 위태로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설 예정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스스로 부과 체계 개선을 중단하고 나선 셈이니 이를 도대체 어찌 받아들여 할까 싶다.

 

정부가 추진해 온 건보료 개선 방향은 부과기준을 소득 중심으로 일원화해 형평성 논란을 해소하고, 피부양자 기준을 높여 부당한 무임승차를 막겠노라는 방안이다.  즉 직장 및 지역가입자에게 각기 달리 적용되던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바꿔 저소득층의 부담을 줄이는 대신 고소득 직장가입자와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의 부담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현 체계에 비한다면 상당히 합리적인 방안임이 분명하다.

 

ⓒ뉴시스

 

실제로 건강보험료 개선 기획단이 이번에 마련한 소득 중심 부과체계가 시행될 경우 급여 외 고소득 직장인과 피부양자 45만명 가량은 보험료가 오르게 되고, 지역가입자의 80%에 달하는 600여만 가구는 인하 혜택을 받게 된단다.  이러한 건강보험료 개선안은 물론 그동안 불합리하게 징수됐던 부과체계를 올바른 방식으로 바꾼다는 취지도 있지만,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장기적으로 분산시키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 모든 계획을 백지화하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양상이다.  정황상 잘못된 제도를 올바르게 바로잡기 위한 의도보다 외려 지나치게 지지층의 눈치만을 살피는 형국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만하다.  청와대가 더욱 괘씸하게 와닿는 이유는 이번 개선 중단 결정이 전적으로 복지부 장관의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며 예의 선긋기에 나선 행태와 아울러 백지화가 아니며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해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둘러대던 모습 때문이다. 

 

결국 박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고소득 직장인 및 피부양자 45만명의 반발을 지나치게 의식한 행보로 읽힌다.  물론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왜냐면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콘크리트를 뚫고 지하로 내려앉을 만큼 급전직하의 위기 상황에 직면한 탓에 지지 기반 다지는 일이 그 무엇보다 급선무였을 테니 말이다.  오죽 다급했으면 이렇듯 하루아침에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리는, 비논리적인 방식의 일처리를 했을까 싶다.  하지만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 급락 이유를 곱씹어볼 때 작금의 상황은 되레 박근혜 정부를 더욱 위기로 몰 개연성이 다분하다.  

 

정부는 퇴직후 소득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건보료가 크게 올랐다는 민초들의 아우성을 못듣고 있는 건가, 아니면 부러 귀를 틀어 막고 있는 건가?  애초 건보료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질하려 했던 건 비정상적인 부과체계를 정상화시키고, 재정을 안정화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3년이나 공을 들여온 개선책을 이제와서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만두겠다면 도대체 어찌 하겠다는 건가?  당장 내년부터 예상되는 적자는 또 어떤 식으로 감당할 텐가?

 

정작 비정상화의 정상화는 바로 이러한 경우에나 해당될 법하며,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되뇌여 오던 골든타임 역시 내년 총선을 고려해볼 때 지금이 적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는 이 모두를 백지화하겠다고 한다.  지지율 때문에 집권 내내 지지층 눈치만 살피다 이 지경에 이르렀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는 모두에게 득될 게 없는 데도 말이다.  결국 무능한 박근혜 정부 때문에 민초들만 또 다시 고통을 겪게 되는 셈 아닌가. 

 

이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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