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치적 후진성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새 날 2015. 2. 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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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청와대가 1일 모든 내각과 청와대 핵심 수석들이 참석한 긴급 정책조정강화회의를 개최하고, 수시로 소집할 수 있는 정책조정협의회를 신설키로 했단다.  이는 최근 불거진 연말정산 논란 및 건강보험료 개선 백지화에 따른 민심 이반과 그로부터 비롯됐을 법한, 마치 날개 잃은 새인 양 추락만을 거듭해온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따른 위기 의식의 발로인 듯싶다.

 

물론 휴일까지 반납해가며 애쓰는 모습들이 몹시 안쓰럽긴 하다.  하지만 정부가 애초 작금의 위기 상황에 대한 원인을 잘못 진단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때문에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다분히 국민 시선을 의식한 듯한 이러한 형식적인 제스처들은 그다지 달갑지가 않다.  사실 현재의 상황은 부처 간 혹은 국정컨트롤타워인 청와대와의 정책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빚어진 결과물이라기 보다 애시당초 소통은 안중에도 없었던 현 정부가 국민의 보편적 정서는 나 몰라라 내팽개친 채 오로지 자신들의 지지 계층만을 위한 일방통행식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오늘날의 결과가 단순한 정책 혼선 때문만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전임 대통령의 회고록이 출간되며 또 다른 논란으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현 정부엔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그의 회고록에 대해 즉각적인 반박에 나섰다.  회고록에 담긴 것으로 알려진 남북정상회담 추진 및 세종시 수정안 등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해 제법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 건 어쩌면 필연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는 개헌 문제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의견을 피력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점차 현재의 권력과 과거 권력 간 정면 충돌 양상마저 띠어가는 추세다.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미 30% 아래로 떨어져 벌써부터 국정 동력을 잃으며 레임덕 현상에 직면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쏟아지는 상황이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른바 '사자방' 등으로 국가 재정을 파탄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무슨 염치로 이런 몰상식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과거 한나라당 시절부터 두텁게 형성된 두 사람 간의 앙금이 곧 있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미래 권력 장악을 노린 시점에서 다시금 불거지면서 일종의 과거 및 현재 권력 간 헤게모니 싸움으로 발현되고 있는 형국이다.

 

ⓒ뉴스1

 

결국 이들에게 있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셈이다.  가뜩이나 장기 경기 침체로 시름에 빠져있을 국민들에게 민생과는 거리가 아주 먼 생뚱맞은 일들만 벌여온 데다 일관성이라곤 전혀 없는 정책 행보로 인해 고통을 더욱 배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간의 볼썽사나운 충돌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건, 적어도 새누리당 출신 전현직 행정수반들은 국민의 안위보다 오로지 권력 유지와 이의 쟁취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권력층의 비뚤어진 행태가 결국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하고 말았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4년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가 1일 언론을 통해 일제히 보도됐는데, 그중 우리나라의 정책투명성은 144개 국가 중 133위, 정치인에 대한 신뢰는 97위, 그리고 사법부의 독립성은 82위를 차지하며 후진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게 무슨 망신인가 모르겠다.  입만 열면 국격 타령하던 사람들이 외려 이를 바닥으로 내치고 말았으니 말이다.



물론 전체 평가에 있어선 26위라는, 그런저런 수준의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각 부문별로 나눠 살펴볼 때 우리의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즉  재정수지 및 인플레이션 등 거시경제 부문은 7위, 시장규모는 11위, 그리고 기업혁신은 17위로 나타나, 경제 부문은 일정 수준에 위치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지만, 반면 앞서 살펴보았던 정책 투명성은 130위인 캄보디아보다 낮았고, 정치인에 대한 신뢰는 94위인 우간다보다 뒤처지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져준다.  

 

이는 우리의 경제적 기반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해 있으나 이를 조정하는 정책 내지 제도 그리고 정치 따위의 소프트웨어 부문이 최하위권을 맴돈다는 의미가 된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몸은 이미 성인이 되어 비대하나 정신은 갓난아기와 다름없는, 극히 언발라스한 상황이라 할 만하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되뇌여오던, 대한민국이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유를 해당 지표가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는 셈이다.

 

ⓒ서울신문

 

무능하고 무책임하기까지 한 현 정부의 정책으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과거 권력과 현재 권력 간의 다툼으로 인한 피해 역시 국민들에게 그대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최근 청와대가 비선 실세 국정개입으로 인한 국정 농단 논란을 빚더니 이번엔 정책 혼선과 전 현직 대통령 간 다툼으로 혼란을 더욱 부추기는 양상이다.  모든 역량을 국정 운영에 쏟아부어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위기 상황에서조차 벌써부터 미래 권력을 향한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양새는 국민들에겐 절망적인 상황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휴일에 내각 전체를 불러모아 회의를 개최하며 뒷수습에 나서고 또 다시 협의회를 신설한들 근본적인 국정 기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안타깝게도 국민들 눈엔 한낱 쇼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모습은 오히려 과거에 답습해 오던 보여주기식 행정의 전형을 보는 듯해 못내 씁쓸하다.  가뜩이나 정부 내에 기존 회의체가 6개나 되는 상황에서 또 다시 비슷한 형태의 회의체를 만든다는 건 최근 정부가 정책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땜질 처방으로 이를 뒷수습해오던 예의 그 방식과 같은 맥락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현 정부 역시 갈수록 기대난망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 간 다툼은 여론에 밀리며 소강상태를 보일지언정 결국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수면 아래로 잠시 수그러들 뿐 언젠간 더욱 거센 형태로 활활 타오를 전망이다.  권력 다툼으로 인한 유탄은 모두 국민들을 항할 게 틀림없다.  국정 동력이 꺼져가는 순간 더해진, 그야말로 설상가상인 상황이다.  그러나 이렇듯 엉망진창인 상황에 대한 잘잘못을 굳이 누군가에게 따져 묻는다면, 이들을 대통령으로 뽑아 준 죄밖에 더 있겠는가 싶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우간다보다 못하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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