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실질적인 도움 준다던 '복지'는 어디에?

새 날 2014. 12. 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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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였던 24일 저녁 명동 거리는 수많은 인파로 온통 북새통을 이루며 성탄 전야의 흥겨움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각 서울 동대문구청에선 생계 곤란 때문에 지원 신청을 하러 왔던 한 민원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빚어졌다.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이 주는 상징성 때문에 그의 죽음이 더욱 대비되는 느낌이다.

 

ⓒ뉴시스

 

그렇다면 그가 왜 죽음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속사정을 한 번 살펴보자.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근거로 재구성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수년간 월 30여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받아 생활해 왔단다.  그러던 중 직접 돈을 벌어 자립하기 위한 요량으로 올 5월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해지하고 공공근로에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지원자가 너무 많아 내년 2월이나 되어야 순번이 돌아온단다.

 

덕분에 그의 생활은 더욱 곤경에 빠지며 한 달 30만원 꼴인 방세마저 밀리기 시작했고, 주인 눈치 때문에 노숙하는 날이 점점 늘어만 갔다.  긴급복지지원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어디선가 주워 들은 그, 한 가닥 희망을 안은 채 24일 구청을 찾았지만 지원 대상자 요건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요건을 갖추기 위해선 6개월 이내에 일한 경험을 증명할 '근로확인서'가 필요했는데, 그는 무직이었기에 이러한 조건을 갖출 리 만무했다.  구청에선 다음에 서류를 챙겨오면 신청을 받아주겠노라며 그를 돌려 보냈단다.  하지만 그에겐 다음을 기약할 만큼의 물적 심적 여유가 충분치 않았으며, 작금의 상황을 막다른 길목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그 길로 발걸음을 돌려 8층에 올라 투신하고 만다. 

 

그에게 어쩌면 마지막 희망의 끈이었을지도 모를 '긴급복지지원제도'란, 갑작스러운 위기로 인해 생계유지가 곤란한 저소득층에게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복지 서비스 중 하나다.  지원 대상이 되면 생계와 의료, 주거지원 등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받게 된다.  

 

ⓒ계양구청 공식 블로그

 

지난 2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채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안겨 주었다.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국회는 이른바 '세모녀법'을 지난 4월 발의한 바 있으나 질질 끌어오다 결국 정기국회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를 통과시켰다. 

 

이와 관련하여 보건복지부가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에 따른 '위기상황으로 인정하는 사유'에 대한 훈령을 26일 개정 발령했다.  이에는 긴급지원 대상을 선정할 때 지방자치단체장의 재량을 확대하고, 대상 선정자에 대한 소득 금융재산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있다.  숨진 그에겐 때 늦은 감이 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 이번 법 개정은 한낱 무용지물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고 하여 내년에 좀 더 완화된 기준이 적용된다 한들 그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될지의 여부 역시 불투명하다.  작금의 비극은 마치 송파 세모녀 사건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이분들이 기초수급을 신청했거나 관공서에서 상황을 알았더라면 긴급복지지원 제도를 통해 지원을 받았을 텐데…"라며 현실 인식 부족을 고스란히 드러냈던 언급만큼 황망하기 그지없다.   



갑작스러운 생계 위협에 처한 이들에게 융통성을 발휘하는 일 따위가 그리도 어려운 노릇일까?  기초생활수급과 공공근로 사이에 생긴 어쩔 수 없는 시간적 간극, 그는 아마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긴급복지지원제도의 문을 두드린 듯싶은데, 그렇다면 관청은 그의 생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가능한 제도적인 뒷받침을 모두 활용해서라도, 그도 아니면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해서라도 도움을 베풀었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

 

만일 그러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애초 긴급복지지원제도의 도입 취지 자체가 무색해지는 셈 아니겠는가.  한쪽에선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발굴하겠노라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척하고 있지만, 실상은 실적 때문에 벌이는 형식적인 퍼포먼스일 가능성이 높을 테고, 정작 제발로 찾아온 진짜로 급한 이들에 대해선 이렇듯 차갑게 외면하는 행태가 엄연한 현실일 테니 우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번 사건으로 비단 그의 가족과 지인들만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닐 테다.  해당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그를 직접 응대했거나 그와 일면식이라도 있던 직원들은, 그를 끝까지 돕지 못해 죽음으로 내몰리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이번 연말연시가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은 일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울러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전해진 비보 탓에 예수 탄생을 기뻐하며 온 세상에 축복을 바라던 뭇 사람들 역시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던 건 인지상정일 테다.

 

주위에 갑작스럽게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에게 여러가지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제도라며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이리저리 홍보하고 다니면서도 정작 막다른 처지에 놓인,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원하던 이들을 뿌리친 채 죽음으로 내모는 이 기막힌 현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제2, 제3의 송파 세모녀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개연성이 여전함을 알리는 느낌이라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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