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박 대통령의 연하장이 비난 받는 진짜 이유

새 날 2014. 12. 2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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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에게 보낸 박근혜 대통령의 연하장이 화제입니다.  물론 이는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두 사람의 운명을 극명하게 갈라놓으며 상승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일 텐데요.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 역시 분분했습니다. 

 

먼저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은 시원하다거나 인과응보라는 식의 반응이었고, 반면 박 대통령의 반대 세력은 헌재의 통진당 해산도 모자라 이런 식으로 확인사살까지 해야 하느냐며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평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물론 박 대통령이 보낸 연하장은 연말연시를 맞아 사회 각계에 관행처럼 의례적으로 보내진 것일 테며, 헌재의 통진당 해산 선고가 있기 전에 일괄 발송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정희 전 대표는 당시까지만 해도 통진당이라는 한 정당의 대표 직위에 있었기에 대통령의 연하장 발송 명단에 포함된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경향신문

 

즉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일부러 통진당 해산에 맞춰 이정희 전 대표를 골탕 먹이기 위한 행동은 결코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박 대통령의 연하장 안에 쓰인 '행복 가득하길'이라는 문구가 마치 이정희 전 대표의 현재 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씁쓸하게 비치고 있는 탓에 더욱 화제를 모았던 것 같습니다.  

 

해당 기사에 악플을 달았던 이들 역시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한 행동은 아니었을 겁니다.  거꾸로 이정희 전 대표에게만 연하장 발송이 이뤄지지 않아 그러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그 또한 욕을 먹는 결과가 될 게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포털 기사에 달린 댓글들

 

그렇다면 대통령의 연하장이 욕을 먹고 있는 진짜 이유는 무얼까요?  저는 다른 부분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대통령의 연하장이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던 날, 공교롭게도 한 여대생이 쓴 손편지가 온라인 상에서 조용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내 청소 노동자에게 건넨 손편지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작은 상자에 손으로 정성껏 쓴 편지가 붙어있는 그러한 형태였습니다. 

 

또박또박 적어내려간 손글씨로부터는 박 대통령이 이정희 전 대표에게 보낸 연하장의 인쇄된 활자보다 훨씬 더 정겨움이 묻어나오고 있었으며, 절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게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 씀씀이 또한 글씨체만큼이나 너무 너무 예뻤습니다.  

 

청소하시던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절로 훈훈하게 만들고 있던 겁니다.  앞서 보았던 봉황 문양이 들어간 대통령의 화려한 연하장, 그리고 비록 종이 쪽지에 초라하게 적어내려간 형식이지만 직접 자신이 손으로 써내려간 편지, 둘 중 어느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우시나요?

 

ⓒ국민일보

 

우린 각종 명절 등 특별한 시기만 되면 뻔한 멘트로 이뤄진 온갖 문자 따위를 받게 됩니다.  보내는 이들도 무척 다양합니다.  정치인들부터 각급 단위의 지자체장까지, 그리고 각종 모임의 장 등..  그런데 솔직히 이러한 형식적인 문자는 받아도 기분이 별로입니다.  아니 오히려 받지 않음만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우편으로 날아오는 연하장이라고 하여 다를까요?  어차피 형식적인 문구와 컴퓨터로 프린트된, 정성이라곤 털끝만큼도 깃들지 않은 우편물로부터는 그저 '또 왔구나' 라는 반응만을 불러올 뿐 딱히 반갑다거나 별 다른 감흥을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정희 전 대표에게 발송된 박 대통령의 연하장 역시 그저 그런 내용의 뻔한 형식적 요건을 제대로 갖춘 듯 보입니다.  물론 다른 분들에게 발송된 연하장도 Ctrl-C 및 Ctrl-V 신공(단순 복사 붙임)으로 완성된, 모두가 똑같은 형태의 복제물임이 틀림없을 겁니다.



앞서 던졌던 제 물음에 굳이 답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 싶군요.  그렇습니다.  진정성이란 이렇듯 아주 작은 정성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그러한 형태의 것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엔, 특히 관료 사회, 때마다 의례적으로 보내지는 연하장과 같은 인사치례 따위의 형식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이 불요불급한 경우일 겁니다.

 

하지만 받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서로 기쁨을 누릴 수 없는 그저 그런 형식에 불과하다면 이러한 관행 역시 낭비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일각에서 이정희 전 대표에게 발송된 박 대통령의 연하장으로부터 과히 좋지 않은 시각을 갖게 된 연유 역시 이러한 의미도 함께 내포돼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즉 보내는 이의 마음이 '행복 가득하길'이라는 복제 문구에 담긴 채 모든 이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진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이정희 전 대표의 처지처럼 특별한 사정이 있는 분들에겐 오히려 비수로 다가올 수도 있는 문제이거니와 또 다른 분들에겐 제대로 읽히지도 않은 채 곧장 폐지로 버려지게 될 공산마저 크기에 차라리 보내지 않음만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커스터마이징이 어렵다면 진정성이라도 깃들어야 하거늘, 결국 이도 저도 아닌 형식으로 인해 박 대통령의 연하장은 무수한 비난을 들으며 인심마저 잃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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