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헌정사상 초유라는 통진당 해산보다 씁쓸한 건..

새 날 2014. 12. 20.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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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대한민국의 일상은 언제나와 같이 평온하다는 사실이다.  통진당 당원과 일부 진보세력만이 집회를 개최한 채 이에 항의하며 애달프게 외치는 구호들만 공허하게 허공으로 흩어져 갈 뿐이다.  그랬다.  이번 헌재의 선고는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통진당이 해산되든 말든 도대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분명 서울 도심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숨울 쉬며 살아가는 공간이거늘, 이번 헌재의 선고에 대한 항의 집회를 열고 목청을 높이던 그들은 왠지 외로운 섬에 홀로 갇힌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이는 집권세력의 종북 프레임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이들과의 과거 인연이 자칫 자신들에게 해악으로 다가올까 봐 전전긍긍해하며 선을 긋고 나선 제1야당의 비겁한 태도를 놓고 보건대, 이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마저 든다. 

 

강제적으로 줄세우기 당하고 있는 종북 프레임 앞에서 나 자신만은 종북이 아님이 분명할 테니, 통진당 해산 건은 그저 남의 일에 불과할 뿐이다.  집권세력이 그어놓은 '종북'이라는 정체 불명의 유령 앞에서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알아서들 줄을 서며, 자신의 일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 애써 자위하며 연신 선긋기에 열중이다.  물론 살벌한 공안 분위기를 조성하고 나선 권력의 행태 탓이 가장 클 테니, 이러한 태도 자체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일 테다.



하지만 통진당 해산 결과가 과연 남의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는 문제일까?  물론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당선돼도 내게 피해만 없다면 지극히 나와는 관계없는 일일 테고, 세월호로 인해 수백명의 목숨이 사라져도 내게 직접 닥친 게 아니라면 나와는 크게 관련없는 일, 아울러 담뱃값을 왕창 인상해도 난 비흡연자니까 그러든 말든, 그리고 대통령과 청와대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선 실세 논란과 국정 농단에도 이건 나의 일과는 거리가 멀 테니, 그 대신 그저 만만한 대한항공 땅콩 부사장이나 욕하고 씹어대며 대리만족을 느끼면 그만인 일일 테다.  

 

권력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국면 전환용 물타기를 시도해도 이조차 나의 일과는 관련이 없고, 국민들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정당과 국회의원을 다분히 정치적 성향을 띠었던 헌재를 통해 이를 해산시키거나 자격을 박탈하는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들어대도 나와는 전혀 관련없는 일이다.  안 그런가?

 

허나, 과연 그럴까?  통진당 해산 선고가 있자마자 보수단체들이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과 당원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통진당이 해산될 때 이미 예견됐던 상황이기도 하거니와 우려됐던 일이기도 하다.  통진당에 당비를 내고 있던 진성 당원만 현재 3만명에 달한단다.  이들 모두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되지 않으리란 건 분명하다. 

 

ⓒ국민일보

 

다만, 정황상 어떤 식으로든 이들에게 불이익이 발생할 개연성은 충분하며, 일례로 고발 건으로 조사를 위해 경찰서를 출입한다거나 보다 심한 경우 재판까지 이어져 법정을 오가게 될 경우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에 걸쳐 그들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오게 될 개연성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보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종북'이란 낙인효과가 앞으로 그들을 더욱 괴롭히는 굴레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사실이다.  3만명은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그들 중 우리의 이웃이 포함될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결코 자신과 관련이 없다며 모른 척 하기엔 그 영향력이 만만찮게 다가온다.  종북몰이의 광풍은 이렇듯 모호한 실체를 드러내며 어느덧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오고 있는 와중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래도 남의 일이며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모른 척 해야만 한다.  왜냐?  나 살기도 바쁜데 굳이 남의 일까지 신경 쓸 여유 따위가 내게 어디 있는가.  안 그런가? 

 

덕분에 권력집단을 비롯한 지배세력은 더욱 신이 난다.  국민들을 지금보다 더 먹고 살기 바쁘게 만들면 순한 양이 된 채 절대로 저항이란 걸 할 수 없을 테니 얼마나 요리하기가 편한가.  외신들이 아무리 21세기 한국 현대 민주 사회에서 어떻게 이러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인지 한탄하거나 의아해 하며 떠든다 한들 산케이 신문사의 사례에서 보듯 사법 처리를 통해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지그시 무시하면 그만인 일일 테다. 

 

그랬다.  지금보다 더욱 옥죄가며 이른바 신 유신시대를 열어감에 있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차고도 넘칠 만큼 필요충분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어서와, 유신은 처음이지?" 

 

권력집단이 자신들의 권리를 야금야금 탈취해 가도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달콤함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며, 그저 모른 체 바쁜 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일쑤다.  정치권은 순응형 국민을 양산시키기 위해 한 술 더 떠 지리멸렬한 정치력을 동원, 좌절감을 심어주기에 바쁘다.  때문에 헌정 사상 초유라는 이번 통진당 해산 사건보다 내게 더욱 씁쓸하게 와닿는 건 다름 아닌 어느덧 최소한의 저항조차 잊은 채 좌절 모드에 빠져 모든 상황에 순응해 가는 순하디 순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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