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박대통령의 통진당 해산 평가가 씁쓸한 이유

새 날 2014. 12. 21.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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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입을 빌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다"

 

ⓒJTBC 방송화면 캡쳐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인 데다 절차상 하자는 전혀 없었던 터라 대통령의 표현처럼 이번 사건이 역사적인 결정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이번 사건이 후대의 역사책에 어떤 논조로 기술될지는 그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을 만큼 민감한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이에 대한 내부에서의 우려도 만만찮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마냥 곱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같은 사안을 두고 외신의 시각은 과연 어떠했는지 한 번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AP통신> 한국 헌재가 북한 사상을 따른다는 혐의를 받아온 소규모 좌파 정당에 해산 결정을 내렸다.  헌재가 정당 해산 결정을 한 것은 1988년 헌재 출범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한때 군부 독재를 겪은 한국에서 또다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나온다는 비판과 함께 좌우 진영 간 정치적 대립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현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포함한 독재정권 지도자들이 임의로 국회와 정치집단을 해산시켰다.  그의 강압적 스타일은 18년 독재를 했던 아버지를 닮았다.

 

<뉴욕타임스> 한국 헌법재판소는 친북적 입장이라는 주장에 의해 핍박 받아온 소규모 좌파 정당의 해산을 명했다.  이번 판결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격렬한 분열을 더욱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박근혜 부친을 포함한 독재자들은 독단적으로 의회와 정치 단체를 해산하고 야당을 탄압하기 위해 정당의 활동을 금지하곤 했었다.  박근혜의 경쟁자들은 강경한 그의 스타일이 부친 박정희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로이터통신> 박근혜 정부의 이번 결정이 이념과 북한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갈린 한국에서 대립이 격렬하게 전개되는 와중에 나왔다.  국제엠네스티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국가 안보를 가장해 야당 정치인들을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토통신> 남북분단이라는 특수 사정이 있다고는 하나 정당 활동과 결사의 자유 등 민주주의 기본적 권리에 제한을 가한 결정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소리도 부상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강권 이미지가 한층 강해질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 통합진보당은 박근혜 정부를 가장 격렬히 비판하는 세력 중 하나이며 한국에서 3번째로 큰 정당이다.  한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1958년 정당을 해산한 이후 한국에서는 정부나 법원에 의해 정당이 해산된 적이 없다.
 
<BBC> 한국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정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에서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당국이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지킬 의지가 있는지에 심각한 의문이 든다.  다른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이들의 권리를 부인하기 위해 안보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지지통신> 남북분단이라는 특수 사정이 있지만 정당 활동이나 결사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기본 권리를 제한하는 결정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보수 진보 양 진영 대립이 한층 격화할 것으로 보이며 박근혜 정권의 강압적인 이미지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AFP> 헌재의 이날 결정은 가혹하다.  한국 정부는 기본적인 권리를 축소하고 다른 정치적 견해를 탄압하기 위해 지나치게 모호한 국가보안법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외신은 한결 같이 한국에서의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침해, 그리고 좌우 진영 간 대립의 격화 가능성, 박근혜 정권의 강권 통치를 우려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평가와는 정 반대의 목소리인 셈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 스스로의 평가와 외신의 훈수 둘 중 누가 과연 옳은 걸까?

 

우선 이를 파악하기 위해 헌재의 선고가 내려질 당시의 정치적 상황으로 한 번 돌아가 보자.  이른바 십상시라 일컬어지던 정윤회 씨의 비선 실세와 국정 농단 의혹 사건으로 박근혜 정권은 한창 궁지에 몰리던 찰나였다.  물론 이의 돌파를 위해 대통령이 직접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을 그은 바 있고, 검찰 역시 그에 맞춰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를 서둘러 종결지으려던 참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바람대로 의혹은 쉽게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콘크리트처럼 견고했던 40% 벽마저 균열이 발생하며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치달아가던 순간이다.  이를 방치하게 된다면 집권 2년차에 불과한 시점에서 자칫 레임덕이라는 치명상을 입게 될지도 모를 위기 상황이다.

 

이를 돌파해야 하는 건 기정사실일 테고, 치밀한 물밑 움직임이 있었던 듯싶다.  신은미 씨의 콘서트를 직접 종북 콘서트라 칭하는 대통령의 돌출 행동과 테러 행위마저 옹호하는, 지나칠 정도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부터는 오늘날의 통진당 해산 모습이 눈에 비친 채 어른거리고 있었다.  헌재의 선고 시기를 최후 변론이 끝난 지 불과 한 달만에 갑자기 결정한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의미일 테다.  아마도 이 카드를 언제쯤 꺼내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를 내심 저울질해오던 참이었던 듯싶다.

 

ⓒ채널A 방송화면 캡쳐

 

이러한 결과에 대해선 이른바 보수 언론조차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통진당 해산 효과가 제대로 약발로 먹혀든 채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질 것을 은근히, 아니 대놓고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심지어 지난해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절정을 이루던 당시 오늘날 통진당 해산 사태의 시발점이자 빌미가 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통진당 위헌 심판 청구를 통해 떨어지던 지지율에 재차 날개를 달았던 사례를 언급하며 이번에도 비슷한 효과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통진당 해산 결정은 일각에서의 바람처럼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를 멈추게 하고, 보수세력 등 지지층의 결집을 다시 한 번 이끌며 꺾인 인기를 되살리게 할 기폭제가 될 공산이 크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직접 평가한 것처럼 박 대통령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땐 통진당 해산이 역사적인 결정임이 분명해 보인다.

 

다만, 자유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냈다는 평가에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박 대통령이 언급한 자유 민주주의가 선친이 유신헌법을 통해 처음 도입했을 당시의 개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스스로의 평가가 얼추 비슷할 듯싶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민주주의 개념에서 볼 땐 외신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처럼 그 반대가 될 공산이 훨씬 크기 때문일 테다. 

 

즉 통진당 해산이 헌정 사상 최초일 만큼 역사적 결정인 것만은 분명해 보이지만, 대통령의 쩗은 한 마디의 평가로부터는 반대파를 숙청한 채 본격적인 강권 통치를 알리는 광기 어린 포효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느낌이라 씁쓸하기도 하거니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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