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통합진보당 해산, 민주주의의 후퇴다

새 날 2014. 12. 1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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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이날은 두 가지 사건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날이다.  아니 어쩌면 2년전인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통령선거라는 역사적 사건만으로도 이미 오늘의 비극은 예견됐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헌법재판소가 결국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 박탈을 선고했다.  헌재의 결정에 따른 당장의 결과보다 이로 인한 후폭풍이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제 한동안 우리 사회엔 정체 불명의 '종북몰이' 광풍이 한바탕 휩쓸 전망이며,이로 인한 폐해가 어떤 방식으로 발현될지 예측마저 무의미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득 한 사건이 머리를 스친다.  다름아닌 신은미 씨 콘서트를 향해 대통령이 아예 대놓고 직접 '종북 콘서트'라 칭했던 그 서슬 퍼렇던 발언은 이미 이러한 결과를 예측했기에 가능했던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울러 당시 벌어졌던 일베의 백색테러 행위에 대해 아무런 언급조차 없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히며, 테러 행위를 옹호할 정도라면 앞으로 벌어질 '종북몰이'로부터는 또 얼마나 진한 피비린내가 진동할까 하는 걱정이 앞서게 된다. 

 

당장은 신은미 씨와 황선 씨 그리고 이석기 의원의 암울한 미래가 점쳐지는 상황이다.  물론 통진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종북 색출 작업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며, 종북을 매개로 한 새로운 매카시 광풍이 우리 사회에 강하게 몰아치리라 예상된다.

 

부정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던 국민들의 절규가 한층 고조돼 갈 즈음이던 지난해 9월 느닷없이 터진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마치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거센 후폭풍을 몰고온다는 나비효과인 양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절차와 최후 변론을 들은 지 불과 한 달 만에 갑작스레 내려진 헌재의 심판, 때는 바야흐로 '십상시'로 일컬어지는 비선실세와 국정농단 의혹으로 정권이 궁지에 몰리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19일의 헌재 선고는 결국 위기 국면마다 들고 나오던 예의 그 국면 전환용 물타기 카드 아니었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가능케 하기에 충분하다.

 

ⓒYTN 방송화면 캡쳐

 

참고로 때마침 발표된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박근혜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취임이후 처음으로 40% 아래로 떨어진 37%를 기록했단다.  지난 번 리얼미터의 조사결과(39.7%)와 마찬가지로 콘크리트 지지율에 생긴 균열을 더 이상 방치하기엔 너무 이른 레임덕 현상을 자초하는 결과를 빚게 될 터이기에 이를 서둘러 봉합해야 할 필요성이 엿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3권이 엄격하게(?) 분리된 민주화된 대한민국 사회에서 행정부와 사법부가 혼연일체가 된 채 이러한 결과가 이뤄지도록 동조했으리라고는 차마 생각할 수도 없거니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국민에 의해 만들어진 정당과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이라면, 당연히 이의 해산과 의원직 자격 여부 역시 국민들의 뜻을 물은 뒤 처리했어야 함이 가장 민주적인 절차라 할 수 있을 테다.  이를 무시한 채 사법부라는 만능 요술상자 도구를 빌려 손쉽게 정당 해산과 의원직 박탈이 가능해지는 사회라면 앞으로도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뜻에 어긋날 경우 얼마든 비슷한 사례를 남발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국민의 뜻보다 권력 및 정권의 안위와 입맛이 더욱 중요하고 최고의 가치가 되는, 20세기에서나 볼 법한 비정상적인 사회로 돌아가는 셈이 된다.

 

사실 한 정당을 해산하거나 소속 의원들의 자격을 박탈하는 방식은 가장 민주적이어야 함이 옳다.  어차피 국민들이 원치 않는다면 표를 통해 그러한 의사가 반영되어 도태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도로 살아날 테고, 이러한 절차야 말로 바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일 테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법체계를 이용한 방식 역시 가능했을 테다.  통진당 소속 의원이나 당원들 일부가 소위 말하는 진성 종북세력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들을 색출해낸 뒤 형법이나 국가보안법 등을 통해 모두 처벌하면 될 일을,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지지하며 표를 몰아주었던 정당 자체를 해산하거나 의원들의 지위마저 박탈하고 나선 건 결국 무리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 경우 이번 통진당처럼 헌재의 선고를 통해 해산이 이뤄지는데, 이렇듯 손쉽게 정당이 해산될 수 있다면 현 집권당인 새누리당 역시 그동안의 반헌법적 행태 등에 대해 이를 적용할 시 이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말 테다.  이는 결국 비단 통진당만의 문제가 아닌,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치명적인 민주주의의 후퇴에 관한 문제라는 의미이다. 

 

분명한 건 이번 통진당의 해산 결정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저만치 물러서며 역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종북몰이의 광풍으로 국민대통합이란 화두는 사라져가고 오로지 이념 갈등만이 또아리를 튼 채 무수한 생채기만을 만들어놓을 게 틀림없다.  

 

세계사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던 만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신중에 신중을 기했어야 할 정당 해산이란 역사적 사건이 다소 맥 빠지게 결정되고 말았다.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될 건 통진당의 싫고 좋음과 정당해산 결정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우리 현대사에 또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될 이번 사건은 그동안 피땀 흘리며 어렵사리 쌓아왔던 민주화의 노력을 한꺼번에 허무는, 단언컨대 단시간 내 치유하기 어려울 만큼 뻐아픈 사건으로 기록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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