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교육과 경제적 약자에게 효율성은 독이다

새 날 2014. 12. 1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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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경제정책방향'의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11일 기획재정부와 교육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학교 총량제' 도입과 대형마트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이 담긴 구조개혁 방안을 이달 하순 발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해당 계획이 언론에 보도된 대로라면 몇 가지 측면에서 볼 때 무척 우려스럽습니다.

 

우선 '학교총량제'란 게 무언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는 시도교육청별로 학교 수나 학급 수의 총량을 정해두고 그 범위 내에서 관리한다는 의미로써 학생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반면, 학교 수는 오히려 늘고 있어 학교 시설 관리와 인력 운용 면에서 비효율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현상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 판단됩니다.  정부는 이 제도를 도입해 학교와 학급 수에 대한 구조 개혁을 진행하고 이에 따른 재정을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쓸 계획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매일경제

 

그런데 이러한 계획은 그동안 우리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자 숙원 사업 중 하나인 과밀학급 해소와 상충되고 있는 상황으로 비칩니다.  정부는 그동안 과밀학급을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OECD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가 25.2명, 중학교는 33.4명으로 OECD 평균을 훨씬 웃돌고 있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많았습니다. 

 

학생 수가 자연 감소됨으로써 비로소 과밀학급 해소라는 오랜 숙원이 이뤄져 교육부가 쾌재를 불러야 분명 맞는 상황일 텐데, 갑자기 효율성을 따지며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고 나섰으니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  앞으로 학생 수가 부족한 학교를 중심으로 이를 없애겠다는 취지일 테니, 오지나 외딴 지역에서 그나마 힘겹게 통학하고 있는 이들에겐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제도가 등장하게 된 배경엔 교육부조차 교육 서비스를 공공재의 성격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으며, 마치 사유재처럼 오로지 경제적 효율성만으로 따지려드는 기본 사상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연탄 한 장에 얽힌 사연을 통해 보았듯 공공부문에 있어 무조건적인 효율성이 능사는 아닐 텐데 말입니다.



공공재란 공공부문에서 공공기관을 통해 공급되는 경찰, 국방, 도로, 교육 등의 재화와 서비스입니다.  이들이 무조건적인 시장 메카니즘에 의한 공급에 내맡겨져선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학교 등 공공기관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교육부가 정작 고민해야 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무한경쟁에 내던져진 채 효율성을 따지는 학교 수 조정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치있는 교육이 가능할까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함이 옳습니다.

 

한편, 근래 대형마트 규제에 대한 반대 진영의 논리들이 횡행하며 군불을 때더니 실제로 이의 완화 움직임을 정부가 내비치고 말았습니다.  국내 대형마트들은 지난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현재 신규출점 금지와 월 2회 의무휴업이라는 규제에 묶여있습니다.  이는 아시다시피 대기업과 골목상권 간 동반성장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어렵사리 마련된 합의이자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에 대해 탄력적 운용이나 자자체 협조 당부 등을 통해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이 현재의 틀이나마 유지하며 운영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정책이 영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못하더라도 동반성장이라는 화두가 해당 정책을 통해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소한의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규제마저 봉인 해제된다면 골목상권을 비롯한 중소상인들은 모두 거리로 나앉게 될 테며, 거대 유통회사들의 간판만이 대한민국 거리 곳곳을 환하게 비추게 될 것입니다. 

 

경제적 효율성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연탄 한 장으로 50만 명이 넘는 서민들이 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석탄공사를 섣불리 없애지 못하고 있듯 공공부문과 공공재가 필요한 이유는 분명 따로 있습니다.  교육 부문에 효율성을 들이대며 마구 칼질을 해서는 안 될 노릇이며,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 역시 절대로 없어져선 안 될 것입니다.  정부는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재검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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