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무엇이 그를 백색테러범으로 만들었나

새 날 2014. 12. 1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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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때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던 세월호 유가족들을 조롱하기 위해 극우보수 코스프레 커뮤니티 '일베'가 폭식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다.  주로 활동해 오던 온라인이라는 자신의 울타리를 걷어찬 채 광장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숨이 멎어가던 세월호의 약한 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리기 위해 그동안 온라인의 음습한 곳을 지향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공식적으로 오프라인 활동을 선언한 셈이다.

 

세월호 국면은 '서북청년단'이라는 망령마저 무덤 속에서 끄집어내고 말았다.  지난 9월 이들은 광화문광장에 걸린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거두겠다며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후 11월 재건 총회를 열더니 공식 부활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일베의 광장 등장과 서북청년단의 출현은 그 자체만으로도 섬뜩한 느낌이지만, 그보다는 바로 작금의 백색테러 행위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던 터라 당시 우려를 표했던 바다.

 

ⓒ연합뉴스

 

10일 재미동포 신은미 씨와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전북 익산 신동성당에서 토크 콘서트를 열던 중 한 고교 3년생이 던진 인화물질 테러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신은미 씨와 황선 씨가 종북 논란을 빚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그동안 온라인에서 주로 이뤄져오던 종북 논란을, 오프라인 상에서의 테러행위로 귀결시킨, 결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아찔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아직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에 불과한 그는 어쩌다 백색테러범이 된 걸까.  우선 아직 미성년인 그가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 데엔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테러가 그 나름의 비장한 사명감을 지닌 채 한 행동으로 보이긴 하지만, 결국 일베 따위의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어른들의 비뚤어진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아 부화뇌동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가 왜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인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파고들다 보면 결국 이명박 정권의 태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명박 정권 시절 단절된 남북관계는 5년동안 남과 북이 서로 반목만을 일삼아왔고, 이후 들어선 박근혜 정권 역시 '통일대박'이니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따위의 허울 좋은 정책만을 남발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 대한 해결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권 시절 발호한 일베 류의 이른바 극우 세력은 정권의 비호 아래 세력을 더욱 불려나가며 박근혜 정권의 탄생에도 크게 일조한다.  18대 대선 당시 부정선거의 배후엔 국정원 등 국가기관뿐 아니라 이들의 눈부신 활동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을 테다.  그들의 도움에 힘입어 탄생한 박근혜 정권은 이들을 더욱 비호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 온라인에서의 망동을 넘어 세월호의 혼란스러운 국면을 타고 어느덧 광장으로 자신있게 뛰쳐나와 결국 오늘날의 백색테러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명박 및 박근혜 정권과 일베 류의 공통분모는 여럿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파괴력을 지닌 건 다름아닌 바로 '종북'논리이다.  남북 대치 상황이 빚고 있는 우리만의 묘한 환경이 불러온 살풍경이다.  집권세력은 상황이 불리하게 될 때면 그 대상이 누구든 개의치 않은 채 느닷없이 종북 딱지를 붙여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일베 류를 통해 하이에나처럼 최후까지 그들을 물어뜯게 만들며 공생해 왔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건 이번 테러 행위를 저지른 그와 같은 또래인 현재 청소년들이나 20대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동안 남북관계가 좋았던 경험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을 거쳐오며 남과 북이 평화로웠던 시절은 단 한 차례도 없이 늘상 으르렁거리는 모습만 봐 온 터라 북한에 대한 악감정이 다른 세대에 비해 더욱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북한은 무조건 때려잡아야 할 공공의 적으로 간주돼 오던 터다.

 

이런 상황에서 이념이 한 쪽으로 극도로 치우친 일베 따위의 커뮤니티에서의 활동은 그에게 분명 독으로 작용하고 말았을 테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다른 회원들의 거친 표현을 보며 그는 종북 논란에 대해 오늘날과 같은 적대 감정을 키워왔을 것이고, 직접 테러 행위를 자행하는 일이 마치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이라도 되는 양 과장스레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새다. 

 

결국 백색테러범의 탄생은, 보수정권의 태동과 그들의 긴 집권, 그리고 그들이 비호해온 극우세력의 망동, 남북관계의 긴 경색, 아울러 진보와 보수의 해묵은 이념갈등으로부터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안정한 사회가 빚어낸 또 다른 형태의 괴물인 셈이다.

 

일베가 광장으로 뛰쳐나온 이상, 서북청년단이 재건을 선언한 이상, 이미 백색테러는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생적인 테러 행위가 일베 등의 커뮤니티에 또아리를 튼 채 활동 중인 평화로웠던 남북관계를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청년들이 또 다른 사명감으로 언제든 도시락 폭탄을 던질 가능성이 상존하기에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을 신호탄으로 우리 사회는 어느덧 이념 갈등 및 논쟁을 넘어 본격 혼돈 상황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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