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최경위의 죽음은 예견된 비극이다?

새 날 2014. 12. 1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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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된 문건 유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최모 경위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청와대를 둘러싼 권력 배후에서 국정을 농단하던 이들로 인해 그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던 엉뚱한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다.  결코 있어선 안 될 사단이 벌어진 셈이다.  과연 권력의 속성이란 게 뭐길래 이렇듯 엉뚱한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몬 것인지 그저 참담할 뿐이다.

 

더구나 그가 죽음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면서 남긴 유서엔 청와대가 사건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일개 경찰관에게 누명을 씌웠으며 심지어 회유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마저 담겨있다.  물론 청와대는 절대 그러한 일은 없다며 못박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그동안 청와대와 대통령이 벌여온 무리수 탓에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말 정윤회 씨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는 ‘찌라시에 불과한, 터무니 없는 얘기’라며 일축하였고, 오히려 문건 유출 행위 자체만을 크게 부각시킨 채 검찰에 국기 문란 행위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함께 일벌백계를 주문한 바 있다.



살아있는 권력, 즉 박 대통령의 주문은 검찰의 수사에 방향을 제시해 준 꼴이 됐을 테고, 이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여 오던 검찰 조직이다.  물론 이러한 결과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조차 자조 섞인 반응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청와대의 권력 다툼인 정치적 사건을 왜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하는 건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노릇이라며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새나오고 있던 찰나다. 

 

ⓒ서울신문

 

동료인 최 경위의 죽음을 목도한 경찰 조직인들 속이 편할까?  대통령의 한 마디에 권력 다툼이란 본질은 희석된 채 문건 유출 행위에 초점이 모아지더니 어느덧 권력 다툼과는 전혀 관련이 없던 일개 경찰관을 사지로 내몬 결과물이 아니던가.  비선 실세 의혹의 본류를 벗어나 문건 유출이라는 곁가지에 수사가 집중되는 과정에서 최 경위가 숨지고 말았으니, 조직 특성상 비록 내색을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경찰 조직의 술렁임 역시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일 테다.

 

청와대는 특별 감찰을 벌인 끝에 문건의 작성 및 유출 배후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중심이 된 '7인 모임'으로 지목하는 내용을 검찰에 통보한 바 있다.  그러나 특별 감찰 당사자였던 오 행정관은 청와대 감찰이 조 전 비서관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며 감찰 문서에 서명을 거부한 채 사퇴하는,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청와대, 그러나 정황상 '7인 모임'조차 청와대의 조작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피해갈 수는 없으며, 청와대에 비난이 가해지는 이유이다.  이 과정에서 최 경위마저 죽음을 선택하였으니,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번 사건은 정윤회 씨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문건 유출이 청와대 배후의 권력 다툼과 비선 실세 의혹으로 초점이 모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애초 본말이 전도된 문건 유출에 대한 수사로 박 대통령이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또 다시 특별 감찰을 통해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무리수를 두던 와중에 발생한 비극이다.  이러한 방식의 무리수가 거듭될수록 의혹은 그에 비례한 채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청와대 배후의 권력 주변으로부터는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다.  결국 작금의 비극은 예견됐던 셈이다.  더 이상의 사단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결자해지의 자세로 실체를 낱낱이 밝히고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올해로 고작 집권 2년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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