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땅콩 부사장보다 폐지줍는 손이 더 고운 이유

새 날 2014. 12. 1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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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한 60대가 90대의 노모 봉양을 위해 생활정보지 82매를 훔쳤다 경찰에 붙잡힌 사연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주변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이라곤 죄다 가슴 답답한 것들 일색일 만큼 팍팍한 세태인지라 어쩌면 이러한 얘기가 더욱 도드라지게 와닿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운 사연임에도 불구하고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어 더욱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절도 피의자가 된 아들은 60대라고 하지만, 실은 68세로 70대에 육박하고 있는 데다 소아마비 3급의 지체장애를 앓고 있어 평소 일자리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과거 절도 전력이 수 차례 있어 이번 사건 역시 검찰에 넘겨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검찰시민위원회를 통해 사법처리 결정이 내려져야 하는 상황에서 딱한 그의 처지가 검찰시민위원회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 기소유예 처분과 함께 회의참석수당마저 모아 그에게 모두 전달됐다는 훈훈한 소식입니다.

 

생활정보지를 가져가는 일조차 절도 행위가 될 만큼 삭막해진 요즘입니다.  지난 11월 대전에서는 한 70대가 가판대에 놓인 생활정보지 4부를 가져갔다 절도죄로 경찰에 신고를 당한 뒤 검찰에 송치됐던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사안이 경미하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판결이 내려지긴 했지만, 근래 생활정보지를 둘러싼 민원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이처럼 가벼운 사안을 경찰에서 즉결심판 청구나 훈방조치 등에 대한 논의조차 없이 바로 검찰로 송치했다는 점입니다.

 

과거엔 흔했던 거리 위의 생활정보지를 요즘엔 통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물론 온라인이 활성화되며 오프라인 시장이 위축된 영향이 크겠지만, 그보다는 폐지를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들의 표적이 된 터라 예전처럼 쉽게 구할 수가 없게 된 탓이 더 클 듯싶습니다. 

 

ⓒ헤럴드경제

 

폐지 줍는 노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철을 맞이하고 있을 텐데요.  때문에 이들은 종이 한 쪽이라도 더 줍기 위해 심지어 거리 위에 놓인 쓰레기봉투마저 뒤지기 일쑤입니다.  가판대에 수북이 쌓인 생활정보지를 보고 있노라면 눈독을 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고작 생활정보지 4부를 가져간 일로 경찰에 신고를 당하고 또 검찰에 넘겨지기까지 하는 매우 각박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지체장애로 태어나 온갖 고난 속에서 90대의 노모를 봉양해야 했던 탓에 결국 거리 위의 생활정보지를 훔치게 된 안타까운 사연은 최근 사회적 핫이슈가 되고 있는 이른바 대한항공 땅콩 부사장의 부족함 없는 환경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듯해 더욱 가슴 아프게 와닿습니다. 

 

이른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덕분에 대기업의 부사장 자리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하고, 그동안 어려움이라고는 털끝만큼도 모르고 자랐을 그녀이기에 타인의 고통 따위에 대해 느낄 여지는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껏 타인에게 사과라는 것을 해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을 터이기에 이조차도 엉성하기 그지없습니다.  오히려 화를 더욱 돋우는 꼴이 되고 말았다죠? 



생활정보지 몇 장을 가져가는 일조차 절도 행위가 되어버린 세상, 아울러 생활정보지 몇 장 때문에 경찰서와 검찰을 들날락거려야 할 만큼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 그와는 반대로 부모 잘 만난 덕분에 자신의 말 한 마디면 못할 일이 없었던 한 여성, 생활정보지를 훔쳐야 할 만큼 어려운 이들이나 그밖에 남의 처지라곤 눈곱만큼도 이해 못한 채 자신의 왕국에 갇혀 지내오던 이 여성은 어이없게도 결국 땅콩 하나 때문에 자신의 밑바닥을 만천하에 그대로 드러내고 마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타고난 운명에 따라 이렇듯 천양지차의 극명하게 다른 인생을 산다는 게 어쩌면 한 편의 드라마와 다름없어 보입니다만, 이번 대한항공 땅콩 부사장 사건은 재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 아울러 사회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성 및 소양에 대한 부족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꼴이기에 안타깝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회사의 명예 실추는 물론이거니와 국제적인 비웃음거리를 제공하게 됐을 테고 더 나아가 국격마저 떨어뜨리는 모양새인 걸 보아하니, 타고난 운명보다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사람의 됨됨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여실히 깨닫게 합니다. 

 

때문에 아무리 가진 게 풍족하고 완벽하게 갖춘 재벌가의 사람이라 한들 이렇듯 자신의 소양 부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천박함보다 비록 가진 건 없고 모든 상황이 열악하지만 90대의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기 위해 눈물겹도록 애쓰는 보잘 것 없는 이의 따뜻한 심성이 훨씬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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