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이인호 KBS 이사장 발언이 우려스러운 이유

새 날 2014. 10. 25. 07:52
반응형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의 일부다.  그런데 공영방송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대한민국 헌법에서 계승하고 있는 독립운동 정신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22일 이인호 KBS 이사장은 국감 현장에서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독립을 반대한 분이기에 대한민국 공로자로서 거론하는 게 옳지 않다.  상해 임시 정부는 임시 정부로도 평가받지 못했고 우리가 독립국 국민이 된 것은 1948년 8월 15일 이후이다"라며 소신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구 선생은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분이며, 대한민국 정부가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한 바 있다.  그렇다면 국가에서도 인정한 김구 선생의 건국 공로를 부인하겠다는 건 대한민국 체제 자체를 부인하겠노란 의미가 아닌가.  더군다나 헌법에서조차 명시되어 계승하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한다는 건 결국 대한민국 헌법마저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지난 9월 이길영 KBS 이사장이 물러난 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의 추천으로 이사장의 자리에 오른 그녀는 취임 당시 조부의 친일 논란에 대해 조부의 행적을 문제 삼을 정도라면 당시 전 국민이 친일파여야 할 테고, 조부의 경우 직업적으로 먹고 살기 위한, 불가피했던 친일파였노라며 일종의 친일파 물타기를 시도하여 공분을 일으킨 바 있다.  

 

ⓒ뉴스1

 

그러나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란 사람은 그녀의 이토록 해괴망측한 역사관이 공영방송 업무를 추진하는 데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그녀를 두둔하고 있다.  적어도 공영방송의 관리감독을 책임진 인물이라면 그녀의 도를 넘는 행위에 대해 꾸짖고 나섰어야 하지 않나?  이쯤되면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하는, 몰상식함의 연속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알다시피 공영방송은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기본 이념으로 삼아야 한다.  '공공성'이란 방송 전파의 공적 소유 측면의 절대적 가치에서 비롯된 개념이며, '공익성'이란 방송이 특정인의 사적 이익이 아닌, 전파의 주인인 일반 대중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방송 행위의 기준을 제시하는 이념이다.  KBS가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는 대신 시청자들의 시청료로 그 재원을 충당하는 이유이다. 

 

때문에 공영방송인 KBS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며 항상 사실만을 전달하는 공정성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할 입장이다.  그렇다면 김구 선생을 폄하할 만큼 비뚤어진 역사관을 지닌 이인호 씨가 과연 이러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과연 적임자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물으나 마나 한 질문이다.



그러나 난 그녀 개인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그녀가 지닌 비뚤어진 역사관은, 아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불행했던 수난의 시대를 살아온 가족사와 맞닿아있기에 적어도 피붙이라는 혈연관계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을 고려해 볼 여지가 아주 조금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정작 안타깝게 하는 건 그녀의 개인과 가족사가 아니다.  이런 인물이 공직에 발탁되고 있는 작금의 사회 현실과 다른 상황도 아닌, 무려 국정감사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김구 선생을 욕되게 한 사실에 주목한다. 

 

그동안 친일 역사관과 극우적 성향을 은연 중 드러내는 인물들이 우리 사회에 간혹 있어 왔지만, 어느덧 떳떳하면서도 공개적으로 만천하에 자신의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내놓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우리가 정작 우려해야 하는 건 이렇듯 반헌법적이며 대한민국의 법통마저 무시하는 사상을 지닌 인물이 공공연하게 소신 발언을 일삼으며 궤변을 떠벌리도록 만든 주변 상황이다.  이는 온라인의 음습한 곳에서 은둔하며 일탈을 벌여오던 '일베'가 광장으로 뛰쳐나오고, 무덤속에서 썩어가던 '서북청년단'이 부활을 선언하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는 시대적 조류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이인호 씨는 NHK 이사장이 아니다.  KBS 이사장이다.  때문에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체제 부정의 역사관을 지닌 사람이 대한민국의 공영방송 이사장이란 직책을 유지해나간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