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게임 이용자는 왜 분노하는가

새 날 2014. 10. 2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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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박주선 의원의 홈페이지가 23일 하루종일 먹통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해외 일부 게임 제공사가 한국어 서비스를 중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분노한 네티즌들이 박주선 의원의 홈페이지를 향해 일시에 몰린 탓이다.   

 

박주선 의원 홈페이지 캡쳐

 

애초 발단은 이랬다.  지난 9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주선 의원이 해외 게임업체 밸브사의 게임 플랫폼 '스팀'이 국내 유통 목적이 있는 한글 버전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물 등급 분류를 받지 않은 채 서비스를 제공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유럽, 독일, 일본 등지에서는 진작부터 등급 분류를 받아 서비스해오던 터라 국내법만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상황이란다. 

 

우리나라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와 민간등급분류기관인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를 통해 게임물 등급 분류를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미국 등 4개의 국가 역시 자국 내 유통되는 게임에 대해 비슷한 방식으로 게임물 등급 분류를 시행하고 있으며, '스팀' 또한 이에 따르고 있다.

박 의원은 지난 17일 국정감사를 통해 게임위에 재차 '스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요구하였으며, 이에 게임위가 해당 회사 측에 한국어로 지원하던 게임을 대상으로 한국 법률에 따라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부 게임이 한국어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결국 일시에 폭발한 네티즌들의 불만이 박 의원의 홈페이지를 향했던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다운로드 페이지 캡쳐

 

'스팀'은 현재 네이버 게임 다운로드 2위에 랭크될 만큼 영향력 있는 게임 플랫폼이며, 국내 이용자가 적어도 7-8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국내 공식 유통이 이뤄지지 않아 마치 해외 쇼핑몰에서의 직구 방식과 같은 형태인 해외 결제 카드로만 이용 가능할 만큼 악조건 하에서도 이 정도의 호실적이라면 필시 대박난 플랫폼이라 할 만하다.

 

문제의 발단은 이로부터 잉태된 듯싶다.  국내 이용자의 비중이 높다 보니 서비스 차원에서 공식 한글 버전을 제공했을 테고, 이는 다분히 한국 이용자들을 의식한 행보일 테니 여타 국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국내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의 유인이 됐을 테다.  국내법 적용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왜냐면 '스팀'의 일부 게임이 미국에서는 피(Blood)와 강렬한 폭력(Intense Viloence)을 근거로 17+(청소년 이용불가) 등급 분류 판정을 내린 바 있고, 유럽 역시 폭력성을 근거로 16세 이상 이용가 내지 18세 이상 이용가로 등급 분류될 만큼 유해성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국내법을 적용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무리수라는 입장이다.  네티즌들의 우려와 분노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해외에 적을 둔 글로벌 업체 서비스마저 국내법을 적용시키려드는 꼰대짓을 벌여 기존 서비스를 죄다 중단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유망 개발업체에 치명타를 가해 국내 게임시장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도록 만드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이미 한글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얘기는 국내 사용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거니와 공식적인 국내 유통을 염두에 둔 행위라 판단된다.  그만큼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다.  아울러 일부 게임에서의 내용과 속성이 갖는 유해성 및 파급력을 고려해 볼 때 아무리 해외를 기반으로 하여 제공되는 서비스라 해도 미성년자를 비롯한 수많은 국내 이용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상황은 충분히 재고돼야 할 사안이다. 

 

오히려 네티즌들의 분노는 자신들만의 내밀한 꿀단지라 여겨지던 곳이 만천하에 드러나며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이에 대한 화풀이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치기어린 행동이라 여겨진다.  이분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개인의 만족을 위해 폭력성 짙은 게임을 무분별하게 모두가 이용 가능하도록 방치하는 건 공익상 올바른 일이 아닐 테다.

 

게임위 영문 홈페이지 캡쳐

 

정작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따로 있다.  현재 게임위 영문 홈페이지에는 심의를 안내하는 링크가 없고 문의 메일 주소조차 기재되어 있지 않다.  즉 등급 분류 제도에 대한 소개만 있을 뿐 아직 해당 서비스에 대한 영문 매뉴얼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아 해외 업체가 국내 게임물 등급 분류제도를 따르려고 해도 어찌 할 수 없다는 부분이 가장 큰 맹점이라 할 수 있겠다. 

 

아울러 게임뿐 아니라 IT시장의 판도는 예측이 어려울 만큼 급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에 적을 두고 있는 글로벌 게임이 점차 대세를 이뤄가는 여건속에서도 여전히 우린 10년전 낡은 법률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입장이다. 

 

네티즌들의 분노는 바로 이러한 게임위의 허점을 향해야 함이 맞는 것일 테지, 등급 분류를 적용받아야 한다는 방침에 분노할 상황은 분명 아니다.

 

물론 무언가 자꾸만 못하도록 제지당하고 있는 작금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볼 때 네티즌들의 분노가 전혀 이해 안 가는 부분은 아니다.  단순히 이번 사안 때문만이 아니다.  사이버 모독 및 명예훼손을 막겠다며 벌이는 사이버 검열과 단통법 등에 의해 가뜩이나 숨통이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을 터이기에 자신들이 애용해오던 해외 게임마저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할 처지가 되니 상승효과를 불러오는 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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