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내게 있어 국가에 대한 믿음에 대해 의문부호를 붙이게 만든 대표적인 사건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주지 못하는 국가란 과연 국민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걸까? 비단 세월호뿐만이 아니다. 최근의 판교 환풍구 참사 역시 결국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 마련해놓아야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등한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부족한 시민의식이 가장 직접적인 사고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평소 우리의 의식을 감안해볼 때 결코 틀린 말은 아닐 테다. 그러나 하물며 국가란, 국민의 의식수준까지 고려한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안전 시스템을 마련해놓아야 하는 게 분명 맞다. 때문에 환풍구 참사 역시 국가의 허술했던 역할을 탓하지 않을 수가 없다.
25일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나라가 온통 뒤숭숭하다. 이 사안을 놓고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팽팽히 맞붙으며 벌집을 쑤셔놓은듯 온종일 떠들썩했다. 하지만, 전단 살포로 인해 정작 가장 피해를 입었으리라 예상되는 계층은 과연 누구일까? 다름 아닌 북한과 휴전선을 사이에 둔 채 접경지대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일 테다.
지난 10일 경기도 연천에서 탈북자단체가 살포한 대북전단으로 인해 남북간 총격전이 벌어진 바 있다. 당시 주민들은 공포에 질린 채 대피소를 찾아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수 차례 시도됐던 전단 살포 행위에 뿔이 난 북한이 또 다시 전단 살포를 해올 경우 타격을 가할 것이란 선전포고마저 있던 상황이었지만, 정부는 탈북자단체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며 이를 묵인하였고 결국 무력충돌을 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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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5일 또 다시 탈북자단체의 전단 살포 행위를 묵과했다. 접경지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기라도 하다는 의미인가. 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일보다 일개 탈북자단체에 대한 표현의 자유 보장 쪽으로 무게추가 더욱 기울어지고 또 이를 방조하는 모양새를 보아 하니, 현재 정부가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다.
단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수 백명의 병사를 투입시키거나 전직 대통령을 특사로 파견해 억류된 자국민을 구해오는 나라가 있고, 또한 인질로 억류된 단 한 명의 생명을 구조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대가로 지불하면서까지 국가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나라도 있다. 단 한 명에 불과하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국가는 정치적인 이해관계 따위로부터 한 발자욱 뒤로 물러선 채 무엇보다 이들의 보호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어떤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총격의 위협에 노출되더라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묵인 내지 방관만 하고 있다.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된 헌법 가치마저 무색해질 지경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따라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에 무엇보다 우선한 정책의 방점을 찍어야 한다.
정부에 묻고 싶은 질문 하나가 있다. 탈북자단체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과연 접경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게 분명 맞는가? 만일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로 인해 이미 크게 신망을 잃은 대한민국 정부는 도저히 회복이 불능한 상태에까지 이른 것이라 단정지을 수 있겠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대북전단 살포까지, 일련의 흐름을 감안해 볼 때, 현재의 대한민국은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제대로 지켜주지 않고 있으며, 외려 자꾸만 사지로 내몰고 있는 느낌이다. 국가는 이렇듯 국민에 대한 책무를 제대로 다하지 않고 있으면서, 반대로 국민들에겐 각종 의무만을 강요하고 있다. 국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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