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아마도 국민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당시엔 급식이란 게 없었기에 도시락을 싸들고 다녀야 했다. 더군다나 쌀이 모자라 혼식이 장려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혼식과 분식 장려는 단순한 권고 차원을 넘어 개인이 싸들고 다니는 도시락에까지 관여하는 수준이었다. 지금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당시엔 그러했다.
점심시간이면 밥을 싸온 도시락 용기의 뚜껑을 모두 열어놓은 채 보리밥이 어느 정도 섞여있는지를 담임 선생이 일일이 육안으로 확인하며 돌아다녔다. 어느날의 일이다. 그날도 여지없이 도시락 검사가 행해졌는데, 내 도시락이 문제였는가 보다. 보리밥 비율이 기준에 못미쳤던 모양이다. 담임 선생은 내게 도시락을 먹지 못 하도록 했다. 난 난처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날 점심밥을 먹지도 못한 채 방과후 집으로 고스란히 가져와야만 했다. 당시 내가 받은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오죽하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히 기억해낼까 싶다.
ⓒ노컷뉴스
일부 학교에서 성적순으로 급식 순서를 정해 점심식사를 하도록 했노라는 기사를 접했다. 학교 역시 하나의 사회이기에 엄연히 권력과 비슷한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라 판단되며 난 이를 인정하는 입장이다. 다름 아닌 성적순일 테다. 아무리 서열 순으로 매겨지는 행태가 불합리하다 한들 교육 현장에선 어떤 식으로든 성적이 매겨져야 할 테고, 그게 혹여 절대평가가 되든 상대평가가 되든, 따라서 일정 수준의 서열은 필요악이라 판단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에게 관심과 혜택이 쏟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엿보인다. 학교 권력은 아무래도 아이들의 성적과 비례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일엔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다. 성적순에 의해 서열을 매기는 건 수행평가나 성과 여부를 가리는 영역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단언컨대, 밥을 먹는 행위는 성적 등 성과와는 전혀 관련없는, 생물의 생존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행동 그 자체다. 이를 성적순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제공한다는 건 사람으로서, 아니 생물로서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마저 침해받는 행위이기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수치심을 극대화시켜 아이들에게 영원히 남게 될 상처만을 안기게 되고, 또한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크다.
이런 방식으로 교육받은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게 되면, 비단 성적이 좋지 않아 급식을 늦게 먹은 아이들이거나 반대로 성적이 좋아 빨리 먹은 아이들이건 간에, 또 다시 학벌에 의해 서열이 만들어지고, 또 자본에 의해 줄을 서게 되는, 작금의 사회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공산이 크고, 외려 이들이 이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만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줄세우기와 서열의 사회적 파급에 가속 페달을 밟는 격이다.
이는 학교 내 권력인 성적에 의한 줄세우기가 이미 만연돼있는 상황에서 교육자로서의 책무를 망각한 채 편의주의적인 발상으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교육자라면 적어도 성적순으로 아이들의 줄을 세워야 할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가려낼 줄 아는 능력 정도는 갖추었으리라 본다. 만일 스스로 이러한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다면, 교육자로서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 타 직종으로의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국민일보
서울의 한 주택에서 60대 독거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그가 남긴 봉투엔 10만원이 들어있었으며, '고맙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라'는 문구를 남겨놓아, 자신의 시신을 수습할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감사를 표했단다.
독거노인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모순들이 응축된 결과물이라 결코 낯 선 소식은 아니지만, 그가 남긴 밥 한 끼 사먹으라는 따뜻한 글귀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유가 있다. 가슴 뭉클함의 이면엔, 때가 되면 누구나 끼니를 해결해야 할 테고 더군다나 똑같은 한 끼 식사라고 하지만, 성적 서열에 맞춰 수치스럽게 먹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급식 이야기에 독거노인의 국밥 한 그릇 소식마저 오버랩되니 이 가을 내겐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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