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북한 최고위급 대표단 방문이 우려스러운 까닭

새 날 2014. 10. 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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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측의 급작스러운 유화 모드에 한반도의 분위기가 냉탕과 온탕을 오고가는 형국이다.  지난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명분으로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등 북한의 최고위급 대표단이 인천을 방문하면서부터다.  북한의 종잡을 수 없는 돌출 행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남과 북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록 북한이 인천아시안게임에 선수단을 보내 왔지만, 다소 간의 신경전 끝에 응원단을 보내오지 않았고, 또한 아시안게임 경기장 주변의 인공기 게양 문제(심지어 초등생이 그린 인공기조차 용납이 안 될 만큼 경직된 우리의 태도)와 탈북자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와 같은 일탈 행위로 인해 남과 북은 사실상 살얼음판을 걷고 있던 와중이었다.

 

ⓒ연합뉴스

 

우리 측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이란 다소 선정적이며 뜬금없는 구호와 함께 각종 선언을 남발해 가며 북한을 유인해 보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유연하지 못한 일방적인 정책들로 채워져 있어 북한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엔 실패하고 만다.  이조차도 국내 정치 상황을 향한, 유체이탈 화법으로 일관하던 예의 그 모습과 판박이다. 

 

그렇다고 하여 최근 우리가 북한 측에 특별한 당근책을 제시한 바도 없다.  때문에 우리 측 특사를 사전에 북측에 보내 물밑 접촉을 통해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냈으리란 추측도 과거에 비추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청와대조차 이번 북측의 방문에 깜짝 놀랐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있자면 그마저도 아닐 듯싶다. 

 

물론 북측의 깜짝 행보에 대해 대충 전해지는 감은 있다.  모두가 비슷한 예측을 했겠지만 말이다.  김정은과 관련한 체제 안정성 문제와 맞닿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결국 북한측의 이번 방문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세간에 파다하게 퍼진 김정은의 신병 이상설을 불식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한편, 이렇듯 남과 북의 급작스레 변모된 대화 국면에 앞서 정작 당사자들보다 더욱 민감해하는 부류들이 있다.  한반도의 급변 상황을 염두에 둔 주변 국가들의 움직임이다.  최근 한반도 상황을 둘러싼 이웃 국가들의 각종 주장과 논란이 부쩍 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외교국방 전문가들이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일본내 기지를 사용할 경우 일본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선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5일(현지시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개한 지난 7월 '퍼시픽포럼'주최 미일관계 콘퍼런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측 전문가들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일본내 기지를 사용하는 문제에 일본 총리가 아무런 권한도 없이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사실 미약하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 1960년 한반도 유사시 일본 정부와의 상의 없이 일본 내 기지를 이용하는 내용의 미일 안보조약 비밀 부속합의 체결을 통해 일본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와 여지를 전혀 남겨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이러한 억지 주장을 펴는 데엔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일본 측이 우려하고 있는 건 위의 부속합의에 따라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일본 정부의 허락 없이 일본 내 기지를 사용하게 되면 일본 본토를 북한의 핵무기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시키는 결과가 되기에 정부가 이를 방관해선 안 된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이는 개정되는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얼마 전 일본 정부가 자위대 파견의 '지리적 제약'을 없애는 조항을 반영시켜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전 지구적으로 대폭 넓힐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일으켰던 대목의 연장선이다.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일본 집단자위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속내를 엿볼 수 있으며, 한반도 급변 상황을 핑계로 미국은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직접 날개를 달아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일본 아베 정권의 망동은 끝이 없고, 갈수록 점증되는 일본의 우클릭이 염려스러운 현상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한반도 급변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 우리를 둘러싼 열강들의 입을 통해 자꾸만 오르내리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되레 우리의 속을 불편하게 만든다. 

 

정보력에 있어 월등히 뛰어난 그들일진대 이러한 발언이 암암리에 새나오고 있다는 건 비록 뜬소문처럼 돌고 있는 와중이지만, 어쩌면 김정은의 신병 이상설과 북한 최고위급 대표단의 뜬금없는 남한 방문이 맞물리며 가까운 시일 내 한반도 상황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는 게 아닐까 싶어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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