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이버 검열에 대한 우려로 인해 국민 메신저라 불리는 '카카오톡'으로부터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망명이 대거 이뤄지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 개발의 선두주자라는 잇점과 시장 지배적 지위에 그동안 너무 안주해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다음카카오에 자극이 되는 사건임에 틀림없고, 최악의 경우 자칫 한 기업의 명운마저 좌우할 만큼 커다란 이슈가 될 만한 일이지만, 그보다 나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헤럴드경제
국민 개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표현의 자유마저 직접 옭아맬 정도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저만치 뒤로 후퇴시키고 있는 정부의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고작 사용해오던 앱을 바꾸는 행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분명 증세임에 틀림없는 담뱃값 인상의 이유에 대해서도 국민 흡연율 감소니 국민 건강 증진이란 말도 되지 않는 핑계로 둘러대고, 이젠 하다하다 못해 청소년 흡연율을 낮추기 위함이란 어쭙잖은 논리로 일관해오기 바빴던 정부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 걸까? 국민의 수준을 그 만큼 얕잡아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국민의 성향을 꿰뚫어보듯 어느덧 이젠 조롱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좋다며 히죽거리고 마는 우리들이다. 이 정도로 만만한 환경이기에 개인의 사생활마저 일일이 직접 감시하겠노라고 나설 수 있었던 정부일 테다.
ⓒ경향신문
18대 대통령선거에 대한 부정선거의 흔적이 수많은 곳에서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일탈에서 비롯됐다는 말도 되지 않는 정부의 발표에 모두가 모른 척하기 바빴다. 일부만이 이를 성토하고 나섰지만, 공권력의 기세에 눌려 그 힘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진실이 그대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며 권력은 자신감을 얻은 반면, 국민은 좌절감에 빠져들어야 했다.
무력감이 빚어내고 있는 좌절감은 밑도 끝도 없다. 지난 4월부터 5개월 이상 지속됐던 세월호 참사 국면을 정쟁으로 몰고간 집권세력과 정부의 꼼수에 막혀 우린 다시 한 번 커다란 절망을 맛봐야만 했다. 과거 민주화를 일궈냈던 투지와 기상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온 우리 사회가 제법 배가 불러온 탓인지 자아도취에 빠진 모양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가 거저 생겨난 것이란 오만함에서 비롯된 듯 현재의 안락함이 주는 풍요로움에 한없이 젖어든 채 자신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어느덧 우리의 머릿속을 지배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전 정권이 억지스레 만들어도 그저 방관하기만 했던 괴물 '종편'이 어느덧 자리를 잡아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전방위적으로 설파해도 별 의심 없이, 아니 아무런 생각없이 이를 받아들이고 어느덧 그에 물들어 간다. 그 사이 합리적 의심 따위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이젠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척박한 환경으로 전락하고 만 우리의 언론이다.
ⓒ연합뉴스
권력이 자신의 목에 칼을 직접 겨누고 들어와도 우리가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앱을 바꾸는 일이 전부다. 홍콩 시민들이 민주화 시위를 벌이며 독재정권에 저항한 한국 국민들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할 각오를 하겠다는 외침 앞에서 오히려 우린 너무도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들 수조차 없다.
정부와 권력의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는 시민들의 무관심한 태도는 결국 '일베'라는 괴물을 광장으로 끌어냈고, 무덤 속에서 썩어가던 '서북청년단'마저 부활시켰다. 이러한 차마 말도 안 뒬 것 같은 현상들은 애써 일궈낸 민주주의를 스스로 지키지 않을 경우 언제든 와르르 무너뜨릴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정권이 행하고 있는 각종 무리수는 우리가 과연 민주주의를 향유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또 다시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현재 누리고 있는 우리의 삶이 어떤 치열한 과정을 겪으며 이뤄낸 것인지 애써 모른 척 무시하고, 그저 자신만 배불리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야금야금 탈취당하고 있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어느날엔간 현재의 풍족한 삶마저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프라임경제
마치 비이커속에 개구리를 넣은 후 서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반항하지 않은 채 온도에 적응해 가다 결국 죽게 되지만, 개구리 스스로는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을 결코 알 수 없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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