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홍콩이 묻는다 "한국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새 날 2014. 10. 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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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행정장관 자유선거와 관련한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가 2일로 벌써 닷새째에 접어들었다.  학생 시위대는 렁춘잉 행정장관이 사임하지 않을 시 신중국 건국 65주년 기념 휴일이 끝나는 3일부터 정부기관을 점거하겠노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이들 시위대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시간이 갈수록 긴장감은 더욱 고조돼 가고 있는 상황이다.

 

ⓒ연합뉴스

 

한편, 미국을 위시한 우리나라에서도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며 이에 동조하는 기자회견 및 시위가 잇따랐다.  1일(현지시간) 뉴욕,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시카고 등 미국 40개 도시에선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 홍콩 우산 혁명에 지지 의사를 보내왔다. 

 

우리나라에선 한 시민단체 회원들과 홍콩 및 대만 출신 유학생들이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중국 정부의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경향신문

 

바야흐로 전 세계인들의 관심과 시선이 홍콩으로 집중되고 있는 양상이다.  물론 이러한 홍콩 시위를 사이에 두고 미국과 중국의 외교적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는데, 일종의 패권 경쟁을 의식한 신경전으로 읽히는 상황이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1일 양자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이번 시위를 놓고 정반대의 견해를 밝혔다.  미국은 시위대를 지지한다는 입장이었고, 중국은 내부 문제라며 내정 간섭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소식들보다 이번 시위가 우리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건 다름아닌 우리와의 직간접적 관련성이다.  최근 홍콩 현지 집회에서 일부 연설자들이 우리의 영화 '변호인'을 언급하며 홍콩 시민이 독재정권에 저항한 한국 국민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노라는 기사가 현지 신문에 실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반가운(?) 소식을 듣는 순간 정확히 두 개의 상반된 감정이 교차했다.  우선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화의 과거 족적이 이렇듯 해외에서조차 롤 모델로 삼을 만큼 인정을 받으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하기도 하거니와 가슴 한 켠을 뭉클하게 만들고 있었다.

 

또 다른 감정은 다름아닌 부끄러움이었다.  홍콩인들이 우리의 민주화 과정을 본받을 만큼 훌륭했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를 발전시키기는커녕 어느덧 수십년 전의 과거로 퇴행하며 점차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훼손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노컷뉴스

 

우선 통치자의 모독 행위 우려로 인해 검찰에 허위 사실 유포 전담팀이 꾸려지고 온 국민의 디지털 생활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빅브라더 사회로의 도래를 통해 후퇴한 우리 민주주의의 가장 최근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포털이나 SNS 공간, 심지어 휴대폰의 메신저까지 감시하는 사생활 침해의 세상이 온 것이다. 

 

최근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부터 독일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망명을 가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시위 이후 중국판 트위터라 불리는 '웨이보'에 대한 중국 당국의 검열이 대폭 강화됐다는 사실이 오버랩될 수밖에 없는데, 우린 중국과 같은 국가적 혼란 국면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적잖이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통치자의 모독 앞에 국민의 기본권 따위는 특별한 고려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는 사실이 현재 대한민국 민주화의 바로미터다.  경직된 사고를 보이고 있는 현재의 권력은 예술가들의 자존심이랄 수 있는 표현의 자유마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광주비엔날레에서의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 철수가 단적인 사례다.

 

선진 국가들과는 달리 국사 교과서를 비롯한 여타 모든 교과서마저 국정 교과서 체제로의 전환을 꿈꾸며 이에 대한 속내를 공공연히 드러내놓고 있는 집권세력이다.  다양한 의견을 막고 통일된, 권력의 입맛에 맞는 이데올로기 주입을 위한 수순밟기다.  알다시피 현재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이 국정 교과서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니, 이마저도 중국을 따라갈 기세다.

 

ⓒ한겨레

 

언론의 자유도는 더 이상 말해 봐야 입만 아플 정도다.  민주사회에서 차지하는 언론의 역할과 책임은 막중하다.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정도에 따라 해당 국가가 얼마나 민주적인가 측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 때 만들어진 종편은 권력의 입맛에 맞춘 편향된 컨텐츠를 시청자에게 주입시키고 또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며, 공중파나 기타 언론사들 역시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채 진실 보도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방송과 정보통신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설립된 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위원장에 뉴라이트 출신이 임명된 사실만으로도 현재 우리의 언론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 가능하다.  참고로 국제인권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가 올해 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도 지수는 197개국 가운데 68위에 랭크됐으며 계속해서 하락 추세에 놓여 있다. 

 

자신들과 반대 의견을 내비칠 경우 종북세력으로 몰아 프레임에 가둔 채 사회와 격리시키는 방식은 홍콩 시위대가 언급한 영화 '변호인'속 이야기의 모티브였던 부림사건의 망령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긴 유신체제를 만들고 부림사건과 같은 각종 조작사건을 직접 기획했던 인물이 권력의 핵심 요직에 앉은 채 여전히 실세로 활동하고 있는 세상이니 오죽할까 싶긴 하다.  일베나 서북청년단과 같은 극우 단체들의 출현과 망동은 이의 연장선이기에 필연적인 결과다.  이들의 등장은 민주주의 퇴행의 가늠자라 할 수 있다.

 

어렵고 지난했던 우리의 민주화 투쟁은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다행히 해외에서도 이를 인정받고 있고, 특히 이번 홍콩 시위대들이 우리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소식은 여간 기쁘지 않다.  하지만, 홍콩인들이 작금의 우리 현실을 듣게 된다면 적이 실망을 금치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아울러 이렇게까지 민주주의가 퇴행하도록 방치시켰다는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다.

 

우리에 대해 좋은 이미지만을 갖고 있는 그들일진대, "한국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신가?"라며 넌지시 물어온다면 과연 뭐라고 답변을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어라 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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