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존엄을 자처하는 한 나라의 여왕님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주어 없는 그분'이다. 십수 년째 이어져온 가뭄과 수 년째 지속돼온 폭정 탓에 민초들에겐 먹고 사는 일이 여간 고달픈 일이 아니었다. 물론 반대로 지배계층에겐 이처럼 평화롭고 좋은 시절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일반 백성을 한가득 태운 목선이 한강을 건너다 그만 좌초하고 만다.
ⓒ연합뉴스
당시 배를 몰던 선장과 선원들은 가장 먼저 빠져나와 모두 목숨을 건진다. 그러나 봉수대를 통해 구조 신호를 받았던 구조 인력이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을 땐 배가 이미 완전히 뒤집어진 채 수면 아래로 사라진 뒤다. 속절 없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전원이 사망하고 만다. 한강은 통곡의 강으로 변모했다. 뒤늦게 사고수습대책반이 꾸려지고, 원인 파악에 나섰다.
배에선 불법 개조의 흔적이 발견됐다. 선주 측은 개조를 위해 지속적으로 관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금전 청탁을 해왔으며 결국 이들의 묵인 하에 무리한 개조가 이뤄진 셈이고, 더불어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며 정원 이상의 승객을 태우는 무모함마저 발휘됐다. 결국 이런 결과를 야기하기까지 관이고 민이고를 떠나 크고 작은, 깨알 같은 불법부당한 행위가 실타래처럼 마구 얽혀있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의 직분을 망각한 채 승객들을 모두 내팽개치고 그들 몸뚱아리만 보전했다. 구조를 담당했던 이들은 구조 신호를 받고도 한껏 여유를 부리다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치고 만다. 한 마디로 총체적 부실의 완성체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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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백성들 역시 억울한 죽음을 헛되이해선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민초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자 깜짝 놀란 지배계층은 여왕님을 전면에 내세우더니 유가족들이 원하는 모든 조치를 들어주겠노라며 일단의 위기를 넘긴다. 하지만, 정작 들어주겠다던 약속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지부지 되어가며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지배계층에서 유가족들의 청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는 명약관화하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질 경우 그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일 테다. 유가족과 백성들은 노란 리본을 앞세우며 올바른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진상규명을 원치 않는 이들은 시간을 질질 끌며 오히려 백성들의 피로감만을 증폭시켜 나갔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란색 물결과 진상규명 외침은 커져 갔다. 다소 신경질적인 성향이 다분했던 여왕은 노란색만 봐도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다. 신하들에게 보기 싫은 노란색을 당장 없애라며 강력히 주문했다. 신하들은 궁리 끝에 노란색을 오랑캐 프레임으로 뒤집어 씌우기로 작정한다. 이를 위해 배후 세력을 총 동원,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들을 폄훼와 왜곡을 통해 오랑캐 프레임으로 가두는 작업을 진행했다.
여왕은 민초들의 움직임이 자신의 의지대로 잘 흘러가지 않자 답답함을 호소해야 했으며, 그와 함께 지배계층 또한 애가 타들어 갔다. 심지어 해외에서 방문한 불교 사절단이 유가족들을 애도하기 위해 가슴에 패용한 노란 리본마저 정치적 함의가 있는 행위라며 이를 떼라고 요구할 만큼 지배계층의 조바심은 커져 갔다.
결국 여왕은 왕궁 주변을 중무장한 병사들로 에워싸 철통 방어 태세를 갖추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진상규명 요구는 식을 기미가 없다. 급기야 여왕에게선 히스테리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노란색만 발견되면 모두 잡아들여야 직성이 풀렸다. 노란색 천 조각을 웃옷에 부착했다는 이유만으로 왕궁 주변을 지나던 백성들이 마구잡이로 잡혀 왔다.
여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절대존엄인 자신에 대해 모독하는 백성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녀에 대한 욕설과 험담만 이뤄져도 잡아들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가장 눈엣가시는 역시나 노란색이었다.
당대 백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소통도구 카카오톡이 그의 타깃이었다. 두 사람이 모여 있는 방에도, 단체로 모여 있는 방에도, 감시 인력을 마구잡이로 배치시키더니 백성들의 대화 내용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검열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그놈의 노란색이 웬수다. 노란색으로 도배된 카톡이 여왕의 까칠한 성격엔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카톡 방이 개설된 곳엔 온통 노란색 일색이었으니 여왕은 이를 볼 때마다 폭발할 기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왕은 길을 걷던 와중에 문득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앗, 저것은? 그동안 애써 참아왔던 여왕의 분노가 일본의 온타케 화산처럼 일시에 분화했다.
"뭣들 하는가.. 이 여왕의 말이 말 같지 않은가. 저놈의 노란색을 당장 없애란 말이다"
그랬다. 여왕의 다음 타깃은 다름아닌 이 시전(市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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