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통령 위해 국민성 비하한 보훈처장이 괘씸하다

새 날 2014. 5. 1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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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5월이다.  가정의 달이자 계절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시기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게 전부가 아닐 테다.  결코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가슴 속 한 켠에 고이 간직한 채 이를 기리는 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세월호 참사라는 쓰나미급 슬픔마저 더해진 상황이다. 

 

ⓒ뉴시스

 

그런데 5월의 아픔과 세월호의 슬픔을 다독여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외려 이를 더욱 부추기고, 심지어 대통령을 띄우기 위해 국민 전체를 비하하는 발언마저 서슴지 않는 행태를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우린 다양한 사람들의 몰상식한 행태를 바라보며 답답함을 느껴오던 터인데, 그의 연장선이다.

 

5.18 관련 단체들의 줄기찬 요구와 국민들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국가보훈처가 이를 거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공식 기념곡 지정이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국회의 결의마저 무시한 채 독단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지난해 6월 27일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공식 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를 넘겨 또 다시 기념일이 돌아올 때까지 국가보훈처는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이를 회피해 오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광주시가 지난달 리서치뷰에 의뢰해 전국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공식 기념곡 지정에 대해 59.8%가 찬성을, 22.3%가 반대 의견을 던진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어디 그뿐이랴.  마냥 숙연해도 시원찮을 5.18 전야에 빛고을 광주에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그 이름조차 요상한 '연평해전 폭탄주'를 돌리며 시끌벅적 술자리를 가졌던 사실이 지난해 언론에 폭로되며 물의를 빚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랬던 그가 이번엔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또 다른 망언을 쏟아냈단다.  지난 2일 박 처장이 서울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우리 국민성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인데, '뉴스타파'의 10일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세월호 침몰 사건 때문에 대통령과 정부가 아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무슨 큰 사건만 나면 우선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고 어려울 때면 미국은 단결하지만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정부와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이 관례가 돼 있다. 

 

미국의 경우 9·11 테러가 났을 때 부시 대통령이 사후보고를 받은 뒤 사고 현장에서 소방관과 경찰관들의 어깨를 두드려 줬는데 이후 대통령 지지도가 56%에서 90%까지 올랐다. 갈등과 분열이 국가 발전에 지장을 주고 있다. 대통령의 임기말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은 문제다.

 

국가보훈처는 국가 보훈 대상자의 예우 및 보상 업무, 아울러 보훈문화의 창달과 국민 애국심 고취를 담당하는 국무총리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이다.  때문에 이번 발언은 박 처장이 애국심 고취라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고자 언급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애국심이란 과연 무얼까? 

 

자기가 소속해 있는 국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국가에 대하여 충성 헌신하려는 의식이나 신념이 애국심이다.  하지만 박 처장식 애국심이란 국가를 사랑하여 그로부터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충정 류 따위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단언컨대 그에게 있어 애국심이란 오로지 대통령의 안위뿐이다.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우리 국민들의 국민성마저 팔아먹는 무모함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9.11 테러와 우리의 세월호를 같은 선상에 올려 놓고 비교한다는 자체도 모순이다.  두 사건이 빚어진 원인과 그 이후의 정부 대응 조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크다.  9.11은 테러에 의해 벌어진 참사였으며, 이후 정부의 주도하에 국가 전체가 똘똘 뭉쳐 어려움을 잘 극복해낸 사례인 반면, 세월호는 정부의 관리 감독 소홀 자체가 참사 원인 중 하나였고, 이후로는 해경의 부실한 초동 대처, 그리고 국가 재난 관리의 허술함 등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진 전형적인 인재였기에 두 사건을 비교하는 자체가 애시당초 무리다.

 

때문에 300명이 넘는 세월호 실종자 중 단 한 사람의 생명도 구조하지 못한 우리 정부가 욕을 먹어야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끓어오르는 슬픔과 분노를 노란색의 리본 및 촛불집회로 승화시키며 차분히 대응하고 있는, 성숙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국민들의 시민정신을 높이 치켜세워 주어야 함이 마땅할 테다.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은 오로지 징벌자가 되어 유체이탈 화법을 통해 참사 책임자 엄벌의 으름장만을 늘어놓은 채 스스로는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나마 뒤늦게 이뤄진 사과는 형식에 그쳤고, 조문조차 연출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할 만큼 처신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공감능력 부족과 소통 부재를 이번 참사 국면에서 또 다시 인증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피해자 가족이 마치 죄인이라도 되는 양 대통령 앞에 무릎을 꿇고 빌어야만 하는 몰상식한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며, 유족들이 죽은 자식 영정을 들고 대통령과의 만남을 청하며 하룻밤 노숙을 해도 오히려 이들을 폭도로 둔갑시킨 채 경찰의 2중 3중 차단벽과 같은 과잉 대응만으로 일관하고 코빼기도 안 비치는 우리 대통령이다. 

 

박승춘 처장은 대통령의 지지율을 언급했다.  하지만 피해자를 직접 안아주며 위로하거나 구조 현장에 나와 구조대의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하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은 미국 내에서 흔하디 흔한 장면인 것을, 이를 우리의 경우와 직접 비교해가며 지지도를 언급하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할까?  되레 이렇듯 엉망인 상황에서도 50%를 넘나드는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그야 말로 신기에 가깝기만 한데, 이런 환경에서 만약 우리 정부와 대통령이 미국처럼 일사불란하면서도 진정어린 모습을 보였더라면 90%가 아닌, 99%의 지지율도 가능하지 않을까?

 

세월호 참사로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시민들을 향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거나 심지어 경제 회복에 장애가 된다며 여론 몰이에 나서고 있는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언론들, 이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이번 강연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울러 노란 리본을 색깔론으로 덧씌우려던 사람들의 주장과도 대동소이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민들의 슬픔마저 진영 논리에 가둔 채 세월호 참사 유족과 피해자를 마치 폭도인 양 취급해오던 정부와 언론들의 행태와 같은 맥락이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질책이 두려운 나머지 여론 호도를 통해 이를 회피하려고만 드는 작태에 불과하다.

 

박승춘 처장이 미국인들과 비교해 우리의 국민성이 문제인 것처럼 언급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문제인 걸까, 아니면 국민성을 애써 깎아내려가며 오직 대통령 옹호에만 애쓰고 있는 국가보훈처장의 발언이 문제인 걸까?  대한민국 국민들의 국민성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언급과는 정반대로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할 만큼 매우 훌륭하다.  되레 문제는 이런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함과 정부 수반 대통령의 무책임함에 있다. 

 

민의의 전당 국회가 결의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공식 기념곡 지정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거부해오며, 5.18 전야에 폭탄주를 돌리고 술판을 벌인 행태는 국가보훈처의 고유 업무 중 하나인 국가 보훈 대상자에 대한 예우를 등한시하고 있는 셈이며,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이를 국민성 비하의 용도로 활용하며 그저 대통령 보위에만 애쓰고 있는 행태는 국가보훈처의 또 다른 업무 중 하나인 애국심 고취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국가보훈처장의 머리속엔 온통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가득 찬 상태인가 보다.  때문에 삐뚤어진 애국심과 충정에서 비롯된 이 분의 발언은 대통령을 띄우는 대신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비하하며 모독하는 행위에 다름아닌지라, 이런 분이 여전히 자신의 격에 어울리지도 않는 정부 요직에 앉은 채 망언을 일삼고 있는 행위, 너무도 괘씸하여 그저 참담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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