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자원봉사자의 죽음, 세월호 심리치료 범위 확대해야

새 날 2014. 5.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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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를 직접 겪은 탑승객과 희생자 가족 뿐 아니라 그들의 주변을 맴돌며 항상 지켜봐오던 구조대원 그리고 자원봉사자에게 있어 사고 후 한 두 달 가량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주장이 현실화되고 있는 듯하여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뉴시스

 

진도 팽목항과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자원봉사를 해오던 한 40대 남성이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그는 슬하에 대학생과 고등학생 아들 둘을 두고 있으며, 세월호 침몰 후 마치 당신 자식이 희생당한 것과 같은 아픔 때문에 안산 이웃주민들과 고통을 함께해야 한다며 자원봉사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소식은 때마침 유가족들의 잇따른 자살 시도가 들려오던 참이라 저희들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합니다.  지난 9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생 어머니 한 분이 "아들,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갈게"라는 글을 써놓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발견된 바 있고, 11일엔 안산 합동분향소 부근에서 마찬가지로 희생된 단원고생의 한 아버지가 목숨을 끊으려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구조된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두 분 모두 일찍 발견돼 목숨을 건진 경우이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의학 전문가들의 주장 대로라면 지금부터가 실질적으로 가장 위험한 시기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이의 심각성을 깨닫고 해외 사례를 참고하여 지난 1일 사상 최초의 국립 PTSD 전문 기관인 '안산 트라우마 센터'를 개관했습니다.  개관 후 센터는 곧바로 세월호 실종자·및 희생자 가족을 대상으로 한 심리 지원에 나섰으며, 아울러 안산시내 중고등학교를 찾아 학생과 교직원들의 정신건강 진단 및 상담을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건복지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충격적인 외상성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간접적으로 겪은 뒤 발생하는 각종 증상을 일반적으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 통칭하여 사용해 왔으나 엄밀히 따지자면, 기간에 따라 다시 급성스트레스장애(ASD)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즉 심각한 스트레스로 감정과 행동에 제약이 나타나는 증상이 2일 이상 1개월 이내로 지속되는 경우를 급성스트레스장애, 이러한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전환하여 여기에 맞춰 치료가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의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PTSD가 저절로 회복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며, 10년이 지난 뒤에도 약 40%의 환자에서 이러한 질병이 계속 관찰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만약 이를 방치할 경우 우울증 등 다른 정신장애까지 동반할 가능성이 높기에 적기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안산 트라우마 센터를 3년 이상 유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앞서의 사례처럼  PTSD가 10년 이후까지 지속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라 상설 기관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정부는 외상성 심리치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때문에 향후 전국 단위의 심리 지원과 체계적 PTSD 연구를 위해 중앙 트라우마 센터를 설립, 운영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노컷뉴스

 

그러나 외상성 심리치료의 장기 계획도 중요한 일입니다만, 보다 시급한 사안이 있습니다.  바로 구조 인력과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심리치료입니다.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과 슬픔을 가장 지척에서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들일진대, 아울러 세월호 사고 당시 누구보다 앞장서서 승객을 구조했던 어민들과 침몰 이후엔 참사 현장에서 실종자와 희생자 구조를 위해 애쓰던 구조대원들인데, 이들에 대해선 정작 심리 치료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쏟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 이들이라고 하여 슬픔과 분노 그리고 두려움과 같은 감정이 없겠나요?  다만, 직업상 또는 봉사자라는 지위 때문에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감정을 억제해 오고 있을 뿐입니다.  누적된 감정의 찌꺼기를 해소하거나 배출하지 못해 겪는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 여겨집니다.  오히려 참사 현장 가까이에서 늘 유가족들과 함께하였기에 심리적 상처가 누구보다 더욱 깊었으리라 예상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들에 대해선 구체적인 심리치료 계획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실제 자원봉사자 등이 치료를 받은 사례는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해경 등 정부 관할 구조대원들은 비록 중앙에서의 쳬계적인 지원은 아니지만, 지자체에서의 심리치료 지원 계획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민간 구조대원들과 자원봉사자들입니다. 

 

모두의 시선과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던 찰나 한 자원봉사자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월호 침몰 후 초동대처부터 사후수습까지, 일련의 재난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함으로 인해 결국 대형 참사를 빚고 말았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제2의 세월호 참사 피해자 발생을 막는 일일 것입니다. 

 

정부는 유가족들에 대해 지금보다 더욱 세심한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며, 자원봉사자들과 구조대원들에 대해서도 하루 빨리 체계적이며 구체적인 심리치료 계획을 세워 심리 상담과 치료를 병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의 애꿎은 희생자 발생을 막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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