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슬픔과 분노 표출은 정치 선동이 아닌 국민의 권리다

새 날 2014. 5. 1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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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이어지고 있는 시민들의 긴 조문 행렬과 대규모 추모 집회에 대해 세월호 사고를 활용한 정치 선동이라며 당장 중단할 것을 야당과 시민단체에 요구했다.  12일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자리에서였다.  

 

ⓒ뉴시스

 

"엄중한 시기임에도 이 틈에 정치적 선동과 악용을 꾀하는 정치적 세력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국민들께서 지켜보고 계시니 우리는 더욱 자제 자중해야겠다"  - 황우여 대표
 

"국회가 국민을 선동하거나 정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국민들 마음을 어루만져 드려야 한다"  - 이완구 원내대표

 

"세월호를 이용해 점차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정치선동이 당장 중지돼야 한다. 반정부 투쟁이면 상습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단체들이 원탁회의니 연석회의니 하면서 등장하고 있다. 추모와 반정부투쟁은 구분돼야 한다"  - 심재철 최고위원

 

이게 웬 자다 남의 다리 긁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평소 정치 선동과 물타기에 능통해온 새누리당에겐 국민들의 온당한 슬픔과 분노 표출마저도 이젠 정치 선동으로 보이는가 보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를 빚게된 원인과 수습과정에서 보여온 정부의 무능함에 있어 자신들은 여전히 그로부터 책임이 없다며 단체 인증이라도 하겠다는 양 입을 맞출 기세다.

 

ⓒ미디어오늘

 

세월호 침몰 시 선박 안에 있던 아이들 더러 "가만히 있으라" 하더니 이젠 복받치는 슬픔을 가눌 길 없어 조문에 나선 시민들에게조차 그저 "가만히 있으라" 한다.  당신들이 도대체 무슨 권리로 시민들의 조문 행렬을 막겠다는 건가. 



공감 능력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오만방자한 새누리당의 행태는 대통령의 그것을 꼭 빼닮았다.  집권여당을 대표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은 곧 당 전체의 의중일 테니, 이쯤되면 국민 알기를 자신들의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할 정도로 우습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헤럴드경제

 

시민들의 조문 반응이 왜 이렇게까지 뜨거워졌는지 정말 몰라서 그럴까?  세월호의 침몰 원인엔 정부의 선사 및 선박에 대한 관리 감독 소홀이 애초 그 배경으로 깔려 있으며, 침몰 이후로는 해경 등이 부실한 초동 대처로 골든 타임을 허망하게 날려버렸고, 아울러 정부의 허술한 재난 관리 시스템이 한꺼번에 어우러져 빚어진 전형적인 인재가 바로 세월호 참사다.  300명이 넘는 실종자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다.  더군다나 희생자의 다수는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고등학생들이다.  특히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선 결코 남의 일 같지 않게 와 닿는 것이 인지상정일 테다. 

 

이런 와중에도 행정부 수반이자 국정최고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참사의 책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 채 그저 남 탓만으로 버텨왔다.  이후 등 떠밀려 억지 이뤄진 대통령의 형식적인 대국민 사과엔 진정성이란 개념은 개미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고, 조문 연출 의혹마저 불거지며 여론은 차갑게 식어 더욱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사과를 준비 중이라며 예고까지 하고 나선 상황이다.  물론 중간 중간 시도 때도 없이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어느모로 보나 진정성 있는 사과와는 거리가 멀다.  사과에도 리허설이 있으며 심지어 예고까지 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이번 참사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라 되레 씁쓸하게만 다가올 뿐이다.

 

ⓒSBS 8시뉴스 방송화면 캡쳐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했으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몰상식한 우리 사회, 그로부터 촉발된 슬픔과 분노는 국민들의 의식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지난 10일 SBS가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전국의 2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국민 불안이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9명 꼴로 우리나라의 안전 수준에 낙제점을 줘, 국민들이 정부의 안전관리 능력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새누리당은 이런 결과 앞에서도 정치 선동이라는 과격한 표현마저 서슴없이 사용해가며 막말 퍼레이드를 벌여야만 했을까?

 

ⓒ경남신문

 

반대로 우리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라는 말도 되지 않는 인재 국면을 맞이하여 오히려 침착했으며 무척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 한명의 목숨도 살리지 못한 무능한 정부와 무책임한 대통령의 계속되는 헛발질에도 불구하고,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노란색의 리본과 촛불로 조용히 승화시켜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이렇듯 국민들의 조용한 추모 열기마저 뭐가 그리 눈꼴 사나왔던지, 아니면 뭐가 그리도 두려운 건지, 정치색으로 덧칠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새다.  때마침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예고편이 공개됐다.  15일께 또 다른 버전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비롯하여 국민안전 마스터 플랜 그리고 관료사회 개편방안을 주요 골자로 하는 담화가 발표될 것이라 알려졌다. 

 

이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 쯤 되는가 보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무책임했던 이미지를 한꺼번에 불식시킬 요량인 게다.  6.4 지방선거 또한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물론 급전직하의 위기에 처한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반등의 불씨를 불어넣어줄 필요성이 엿보였을 테다.  한 마디로 역전의 발판 마련을 위한 총공세에 돌입한 모양새다.

 

예고편까지 내보낸 마당에 그날의 보다 완벽한 쇼를 위해 주변의 분위기를 다져놓는 일 따위 역시 절대 놓칠 순 없지 않겠는가.  정부고 여당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오롯이 대통령 지키기에 나섰다.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이유 불문한 채 정치색 내지 종북 이미지로 덧씌워 이를 제거하기 바쁘다.  대통령 지키기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등 정부 부처의 수장 뿐 아니라 이렇듯 여당의 실세들까지 일시에 가세하고 나선 상황이다.  그야 말로 일사불란한 진용을 갖춘 걸 보아하니 윗선에서 모종의 지침이라도 하달한 듯 싶다.

 

ⓒ뉴시스

 

심지어 12일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정몽준 후보마저 "무능하고 위험한 세력에게 시장직을 계속 맡길 수는 없다. 정몽준이 서울시민과 함께 막아내겠다. 서울을 살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지키겠다"며 아예 공개적으로 대통령 지키기에 일조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그가 후보 수락을 하며 흘린 눈물은 잘못된 가정 교육에서 비롯된 참회의 눈물이라기 보다 온갖 악재 속에서도 자신이 선택받을 수 있게 된 안도의 눈물이자, 서울 시민들로부터 동정표를 이끌어내려는 구걸 성격의 눈물로만 보인다.  그는 서울 시정에 대한 관심보다 오로지 대통령을 지키는 일에 진력을 쏟을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슬픔마저 정치 선동이란, 한 꺼풀 덧씌워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를 중단하라고 강요하는 일이야 말로 정치 선동이 아니면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대들이여, 이 시대의 진정한 선동꾼이 과연 누구인가를 곰곰이 되짚어 보시라.  정작 자신들은 선동하고 있으면서 국민들 더러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건 그야 말로 모순 아니겠는가.  단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한 죄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겠다고 나선 시민들을 향해 외려 정치 선동이라며 그만두라고 역정을 내는 현실이 과연 가당키나 한가? 

 

국가적 재난 상황 앞에서 슬픔과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자유 역시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리 중 하나다.  정략적 이익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을 희생시킬 순 없지 않겠는가.  그대들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제발 막말도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램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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