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무엇이 그들을 KBS와 청와대로 향하게 했나

새 날 2014. 5. 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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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이었던 8일 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100여명이 희생자 영정 사진을 들고 KBS 본사를 항의 방문했다.  최근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잇따른 망언에 대해 항의하고, 그의 해임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들 가슴엔 어버이날을 기념한 카네이션 따위 달려있지 않은 채였다.  아니 차마 카네이션을 달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싶다.

 

ⓒ뉴시스

 

그러나 밤 늦은 시각까지 KBS 측의 성의있는 답변이 이뤄지지 않자 이들은 9일 새벽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로 자리를 옮겨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 상태를 이어가야 했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분노케 만든 것일까? 

 

물론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김시곤 보도국장의 세월호 희생자를 교통사고와 빗댄 망언에 있겠지만, 그 기저엔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이란 책임을 망각한 채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친 보도를 일삼는 KBS의 행태에 따른 불만이 녹아들어 있을 테다. 



특히 이번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의 보도 행태는 KBS 입사 4년차 이하 기자들이 진도 참사 현장에서 자신들이 기레기라 불리고 있는 것에 대한 자괴감을 통감하며 스스로 반성문을 올려야 할 만큼 심각한 것이었다.  이들은 반성문을 통해 "KBS가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 9시뉴스를 통해 이러한 뜻을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시곤 보도국장이 얌전히 있었을 리 없다.  "후배들의 이런 글은 대자보 정치다. 그럼 KBS가 실종자 가족 이야기를 다 들어줘야 하나?"  그의 계속되는 망언이 오늘날의 KBS 보도 행태가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금 일깨우고 있는 느낌이다.

 

ⓒ경향신문

 

그런데 세월호 참사로 어수선한 이 와중에 새누리당마저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말았다.  8일 KBS 수신료 인상안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단독 상정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이 KBS 수신료 인상안이 철회되지 않는 한 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다며 배수진을 쳤지만, 위원장인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의 주도로 끝내 상정이 이뤄졌다.  2500원인 수신료를 월 4000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이 주요골자다.

 

KBS는 공영방송이다.  공영방송은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기본 이념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서의 공공성이란 방송 전파의 공적 소유 측면의 절대적 가치에서 비롯된 개념이며, 또한 공익성이란 방송이 특정인의 사적 이익이 아닌, 전파의 주인인 일반 대중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방송 행위의 기준을 제시하는 이념이다.  이같은 이유로 공영방송은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는 대신 시청료로 그 재원을 충당하고 있다. 

 

 

때문에 공영방송은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한 채 공정한 보도와 사실만을 전달하는, 공정성의 확보가 가장 관건이 된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KBS의 행태를 보자면 그러한 정치 중립이니 공정성이니 하는 표현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느낌이다.  오죽하면 KBS 소속 젊은 기자들이 직접 나서 공개 반성을 했겠는가 싶다.  

 

권력의 눈치만을 살피는 일에만 급급해하며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은 진작 포기한 채 국정홍보처로 전락한 KBS는, 국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알 권리에 대해 시청료라는 비용을 지불해가면서까지 목말라해하고 있지만, 반대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멀게 하는 일에만 집중해오고 있지 않은가.  이런 와중에 시청료를 두 배 가까이 인상하겠다고 나선 건 결국 KBS나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할 것 없이 국민 따위는 애초 안중에도 없다는 처사가 아니면 과연 무얼까.

 

공영방송의 책무를 망각한 보도 행태, 더 나아가 망언을 일삼으며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의 심기를 몹시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KBS와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재난의 혼란한 상황을 틈 타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는커녕 오로지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있는 새누리당 모두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셈이다. 

 

ⓒ뉴시스

 

분노에 가득찬 세월호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영정을 든 채 항의하며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은 세상 그 어느 장면보다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들이 KBS와 청와대를 방문하여 울분에 찬 목소리를 내지를 수밖에 없었던 건 결국 우리 사회의 몰상식함이다. 

 

공영방송이란 책무를 내차버린 KBS와 망언을 일삼는 소속 간부, 그리고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있는 방송사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슬픔 따위 무시한 채 과감히 날치기를 시도한 새누리당의 몰지각한 패기,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책임 인정은 없이 오로지 형식적인 사과만으로 일관하는 대통령에 대해, 자신들의 몸을 추스르기도 힘든 유가족 그분들이 국민들의 준엄한 질책을 대신해 주고 있는 셈이다.  너무도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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