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원하는 검찰로 거듭나기 위해 사회 각계로부터 업무 전반에 걸쳐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즉시 정책에 반영해 온 제1기 검찰개혁심의위원회(이하 검개위)의 활동이 지난달 마무리됐다. 검개위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공정성 보장을 위해 구성된 검찰총장의 자문기구로서 법조계, 경제계, 언론계, 시민단체 인사 등으로 꾸려져 1년간 운영됐다.
애초 검찰 개혁의 주된 대상은 이러했다. 인권보장 강화, 법 집행의 공정성 및 투명성 확보, 검찰 인사의 객관성 제고, 신임검사 적격 검증 및 지도 강화, 수사능력 및 감찰 강화, 수사절차의 투명성 제고 등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개혁 과제들을 힘들게 굳이 나열할 필요성이 있었을까 싶다.
적어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하나만 제대로 지켜진다면 나머지 과제들은 절로 해결될 테니 말이다. 그만큼 우리 검찰에 있어 '정치적 중립성'이란, 오랜 숙원과도 같은 해묵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검개위와 대검찰청은 1년간의 활동을 통해 검찰의 중립성과 공정성 강화 제고에 큰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그들 성과 중 대표적인 예가 '정치검찰' 논란의 상징이자 중심에 서 있던 대검 중수부의 폐지다.
그러나 검찰이 실제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경우 검찰의 권력 눈치보기 논란을 자초한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으며, 7일 발표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한 각종 사건들에 대한 수사 결과는 이러한 의문에 오히려 의문부호 하나를 덧붙인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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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채 전 총장에 대한 뒷조사 의혹을 받았던 청와대 비서관실에 대해선 정당한 감찰활동으로 판단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채 전 총장 본인에 대해선 혼외자 의혹의 직접 증거인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지도 않은 채 정황증거만으로 혼외아들이 실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채 전 총장의 혼외자 관련 조선일보의 보도내용은 정황이나 간접사실을 종합했을 때 진실하거나 진실하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채 전 총장에 대해 직접 조사하지 않아도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게 가능했다"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반면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해선 소환조차 없이 서면조사 등으로 대신하며 감찰업무와는 관련이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탈 행위였다는 결론 도출과 함께 조오영 전 총무비서관실 행정관 등의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불구속 기소 처분을 내렸다.
'직접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진실에 접근 가능했다'라는 검찰의 궤변도 우스운 일이지만, 이쯤되면 애초 밑그림이 그려진 대로 짜맞추기식 수사가 이뤄진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절대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이 실재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불법적인 뒷조사의 배후와 윗선의 실체는 정작 밝히지도 못하고, 아울러 대기업의 스폰서 의혹과 같은 껄끄러운 부분은 의도적으로 피한 채, 반대로 채 전 총장에 대해선 정황근거만으로 의혹을 확인하고 만 셈이니 말이다.
이러한 검찰의 수사결과는 그간 청와대가 이번 건과 관련한 불법 뒷조사 의혹에 대해 두 차례 해명했던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청와대 등 권력의 밑그림에 따른 결론 도출을 위해 '정치적 중립성'이란 개혁 취지는 망각한 채 검찰 스스로 무리수를 둔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우리 검찰 개혁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성'이다. 앞에선 대검 중수부 폐지 등의 표면적인 성과를 내세우며 스스로 개혁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뒤로는 개혁의 취지 따위 어디론가 내버린 채 또 다시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검찰 스스로 뒤집어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여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때 자신들의 상사이자 검찰 조직 전체의 수장까지 지냈던 인물인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신들 스스로가 직접 낱낱이 파헤쳐가며 망신을 주고 있으니, 검찰 조직원들의 자괴감이 얼마나 클까 싶다. 이는 곧 권력 눈치보기의 정점을 찍었노라는 검찰 스스로의 인증이자 권력의 눈 밖에 나게 될 경우 자신들마저 언제든 채 전 총장과 비슷한 처지에 내몰릴 수 있음을 깨닫게 했을 테고, 따라서 이를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더욱 열심히 권력에 기댄 채 계속되는 눈치보기와 시녀 역할에 몰두할 공산이 커졌다는 의미 아닐까 싶다.
자화자찬해오던 검찰 개혁은 진작 물 건너갔고, 되레 검찰 스스로 악의 순환고리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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