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산자 죽은자 모두에게 '잊혀질 권리'를 달라

새 날 2013. 2. 1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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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디지털세상, 그 안의 우리.. 사생활 따위 전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웬만한 건물과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CCTV들은 24시간 늘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로 우리 통수를 간지럽혀 오고 있으며, 길바닥 위 심지어 동네 골목 골목 어귀까지, 그 어디를 쏘다니더라도 이들의 매서운 눈길을 피해가기란 실상 어려운 일이다. 온라인 세상은 더욱 심하다. 컴퓨터 등의 디지털기기를 켜는 순간부터 이런저런 작업을 하며 전원을 차단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은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어떤 식으로든 서버에 기록으로 남게 된다.

여러 이유로 디지털 공간에 흘려놓은 개인정보들이 유출되어 피해를 당하는 일, 소위 '신상털기', 이제 흔하디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때문에 자신의 개인정보는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광속에 가까운 디지털 시대의 변화 흐름에 비해 이를 관리하는 현행 법의 수준은 여전히 굼뱅이와 같은 아날로그 수준에 머물러 있어 그 괴리로 인한 문제가 제법 심각한 수준이다.

애인과 헤어지게 된 앙갚음으로 여자친구의 은밀한 사진을 올려 댓글로 평점을 매길 수 있게 만든 사이트 일명 '복수의 포르노'가 얼마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한 피해여성은 올려진 사진으로 인해 이후의 삶이 '살아있는 지옥'으로 변해버렸다고 울먹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여대생 모씨는 한 커뮤니티에 성 상담글을 올렸다가 얼굴, 학교, 페이스북 주소 등의 개인정보가 공개되어 망신을 당한다. 온라인게임 중 상대방과 채팅을 통해 대화를 주고 받다 서로 싸웠고, 이에 앙심을 품은 상대방이 자신의 신상을 털어 커뮤니티 등에 욕설과 함께 마구 올렸으며, 이후 직장과 핸드폰으로 장난전화가 빗발쳤으나 그가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현행법상 인터넷에 올려진 글과 사진 등은 모두 저작물로 간주되어 저작권법을 따르게 된다. 동법 제103조에 의하면 글을 올린 사람이 동의하지 않는 저작물에 대해 복제와 전송 중단을 요구할 수 있을 뿐 삭제 요청에 대한 근거는 없단다. 물론 인터넷에서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규제를 받기에 비록 까다롭긴 하더라도 삭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기는 하다.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이 있는 경우'에 한해 삭제 요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해당 법률과는 별개로 국내 주요 인터넷 서비스 업체와 SNS 서비스 업체 등의 운영지침은 제각각이다. 데이터를 저장할 땐 클라우딩 서비스니 디지털 연동이니 하며 이곳저곳 지들 멋대로 옮겨 놓더니, 정작 데이터의 저작자가 삭제를 요구할 땐 일괄된 지침이나 합의 따위 철저히 무시되어진다. 모두들 저작자의 삭제 권리 따위엔 관심 없고 오로지 데이터의 축적과 유통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나마 데이터 삭제 권리는 본인이 생존해 있을 때만 요구할 수 있다. 현행 법률체계에서는 사망자의 계정과 데이터를 처리하는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의 사망시 디지털 데이터도 자동 삭제되어 함께 죽는 것이 아니기에 자칫 본인의 물리적인 죽음 이후에도 데이터들은 인터넷상에서 영원히 떠돌아다닐 가능성이 있다. 이미 사망한 사람의 데이터들이 계속 인터넷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가족마저 괴롭힐지도 모를 일이다.

해외에서는 이런 틈새를 겨냥해 디지털 인생을 정리해 주는, '디지털 장의사' 서비스가 등장하여 성업중이란다. 일정 회비를 받고 자신의 죽음 이후 디지털 데이터들을 싹 정리해 주는 서비스이다. 수많은 사이트에 달았던 댓글 등도 추적하여 모두 일일이 삭제해 준단다.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디지털.. 인터넷에서 생산되어 저장되거나 유통되는 각종 이미지, 글 등의 개인정보에 대해 소유권을 강화하고 삭제와 수정, 아울러 영구적인 파기 요청까지 가능케 하는 권리, 일명 '잊혀질 권리'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잊혀질 권리'에 대해서는 해외에서 먼저 관심을 보여 왔으며, 그에 따른 사회적 합의와 법적 정비 등에서도 우리에 비해 앞서 있다. 유렵연합은 '잊혀질 권리'에 따라 데이터의 주체가 자신이 게재한 데이터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정보가 포함된 제3자의 데이터까지 삭제하여, 확산방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확정한 바 있다.

한편 우리나라도 최근 '잊혀질 권리'를 찾기 위한 첫 발걸음을 떼었다. 지난 12일 이노근 의원이 '잊혀질 권리'가 담긴 저작권법 개정안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이다. 인터넷에 게시물을 올린 사람이 온라인 서비스 업체에 해당 게시물을 언제든 삭제 요청할 수 있고, 요청받은 업체는 확인 절차를 거쳐 즉시 삭제 가능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

현행법상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훼손에 한해 삭제 요청할 수 있었던 까다로운 조건에 비해 개정안이 통과하게 되면 개인은 인터넷상에 노출된 부정확한 정보나 숨기고 싶은 데이터의 삭제를 요청할 권리를 보장받게 된다.

최근 지상파 방송을 통해 마구 뿌려지고 있는 'All IP'란 광고문구, 디지털과 인터넷이 우리 생활속으로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지 간접적으로 대변해 주는 느낌이다. 덕분에 이젠 우리의 삶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아날로그인 물리적인 삶과 인터넷 공간에서의 디지털 삶을 일컬음이다. 죽음 뒤, 물리적인 몸뚱아리나 유품 등은 장례 절차를 거쳐 께끗하게 정리가 가능하다지만,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디지털 속 유산, 현재 이의 처리에 대한 일정한 방식이 정해져 있지 않아 자칫 물리적인 삶과는 별개로, 디지털 속에선 영원히 죽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첫발을 뗀 시점이니 향후 '디지털 유산' 처리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관련된 법적 정비 또한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아울러 인터넷상에서의 개인정보 유출 내지 신상털기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사후 약방문보다 사전 조심이 최고일 듯하다. 아무리 법적으로 정비되어 잊혀질 권리가 보장받게 된다 하더라도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 따라서 신상과 관련한 개인정보 같은 데이터들 스스로 조심해야만 한다.

관련  인터넷 공간에서의 '잊혀질 권리' 법제화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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