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를 또 다른 표현으로 '뒷북정부'라 칭하면 어떨까 싶다. 중요한 정책을 입안하고 이를 결정하기 전엔 반드시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행과정에 있어서도 제대로된 고지나 홍보가 선행되어야 함은 행정의 기본일 테다.
뒷북행정의 달인, 박근혜정부
하지만 현 정부는 이러한 기본 과정을 생략하거나 밀어붙이기식 행정으로 일관해 오다 뒷말이 무성해지며 반발이 잇따르고 나서야 뒤늦게 이를 수정하는 과오를 수 차례 범해 오고 있다. 앞서의 학습효과도 전혀 먹히지 않는 눈치다.
ⓒ데일리안
지난 7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유출 사태가 본격 불거지기 시작하며 국민들은 우리 식탁조차 결코 방사능 오염에 있어 안전지대가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너무도 안이했다. 막연히 안전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줄기차게 요구했고, 결국 정부는 지난달 5일에서야 뒤늦게 일부 품목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지난 8월 8일 발표됐던 정부의 세제개편안, 이에 대한 논란과 비판이 계속되자 박 대통령이 직접 전면 재검토 지시를 하는 등 발 빠른 진화에 나서며 4일만에 수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기준선을 기존 연봉 3천450만 원에서 5천5백만 원으로 상향 조정한 것이다.
지난주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무선전화기 사용금지 해프닝 또한 앞의 사례들 못지 않다. 내년부터 900㎒ 대역의 무선전화기를 사용하게 되면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는 황당한 소식이 급속도로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핫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정부는 이 역시 뒷북 조치를 취하며 발등의 급한 불을 꺼야 했다. 과태료 부과는 없을 것이며, 판매중인 해당 무선전화기 또한 판매 중지 조치하겠단다.
국민연금 탈퇴 도미노 현실화?
한편 지난달 26일 발표된 기초연금안에 따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연계된다는 이유로 인해, 국민연금 임의가입자들의 탈퇴가 우려돼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안 발표 이후 실제로 국민연금 임의가입자들의 탈퇴 러시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하루 평균 탈퇴자 수가 365명으로, 그 이전보다 40%나 급증했다는 것이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1년에 13만 명 이상의 이탈자가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참고로 지난 한 해의 누적 임의가입자 수는 20만5698명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이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증폭된다는 데에 있다. 때문에 이탈자가 지금 추세에 비해 급속도로 증가하게 된다면 얼마전 진영 전 복지부장관이 경고했던 100만 명 탈퇴 경고의 현실화마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연계된다는 설이 파다해진 이후 최근 8개월간 국민연금 임의가입자의 탈퇴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임의가입자 10명 중 1명 꼴로 국민연금을 스스로 탈퇴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탈퇴 추이는 기초연금안 발표이후 더욱 증가하여 이전에 비해 40% 이상 급등, 도미노현상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의 해명과 보험료 동결.. 그러나 백약이 무효
청와대는 지난달 29일 기초연금안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거세지자 고용복지수석을 내세워 이에 대한 직접 해명에 나선 바 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연계에 따른 논란 등 네 가지 핵심 논란에 대해 요목조목 반박하며 대국민 설득 작업에 나선 것이다.
기초연금안 발표에 따른 국민들의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한 박근혜정부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8일 장기재정 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수립, 2018년까지 5년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고 동결키로 결정한 바 있다. 애초 국민연금 기금의 재정 안정화를 위해 인상안을 검토 중이었으나 기초연금안 논란 여파로 인해 전격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박근혜정부 5년 동안은 보험료 인상을 하지 않겠노라는 속내다.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현실은 잘 알려진 대로 매우 위태롭기만 하다.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에 따르면 2044년 즈음 국민연금 기금이 적자로 돌아서기 시작하고, 2060년이면 완전히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이번 국민연금 보험료 동결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연계를 기반으로 한 기초연금안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일단 피해보자는 심산과 함께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탈 러시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판단된다.
이미 잘 알려진 바대로 보험료 동결로 인해 향후 젊은세대의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이란 건 명약관화한 일이다. 자칫 세대간 갈등의 불씨가 될 개연성마저 엿보인다. 폭탄돌리기가 따로 없다. 이 폭탄은 특이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가 안고 스스로 해결해야 할 폭탄을 크게 불려 차기 정권에게 그대로 떠넘기겠다는 취지인지라 씁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부의 잇따른 극약처방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더욱 가속화되어 임의가입자의 탈퇴가 줄을 잇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쯤되면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위태로운 국민연금 기금의 재정 건전성에도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정부가 내세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꺼내든 셈이라 더 이상의 묘책은 없어 보인다. 물러설 곳도 마땅치 않다. 기존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심리적 동요도 무시할 수 없다. 국민연금의 대대적인 가입자 이탈 행동이 현실화될 경우 정부는 과연 어떤 카드를 사용할 수 있을까?
언제나 뒷북행정의 면모를 과시해 오던 박근혜정부가 국민 복지의 핵심 축인 국민연금의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선 과연 어떤 뒷북을 내놓게 될런지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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