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소나기는 피해가겠다는 심산인 걸까?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방안과 기초연금 공약 후퇴로 인해 가뜩이나 이반된 민심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 박근혜정부가 속이 빤히 보일 정도의 무척이나 쉬운 길을 택하고 말았다. 물론 애초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에 벌어지고 있는 일일 테니 어쩌겠나 싶기도 하다.
국민연금 보험료 5년간 동결
보건복지부가 8일 장기재정 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하여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하였는데, 다음 추계가 이뤄지는 2018년까지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고 동결키로 결정한 것이다. 그동안 비중있게 논의돼 왔던 보험료 인상안은 결국 없던 일이 돼버렸다.
ⓒ경향신문
참고로 국민연금은 관련 법령에 따라 5년마다 실시하는 장기재정 추계를 통해 제도 개선 및 기금 운용 등 전반적인 국민연금 운영 계획이 발표되는데, 올해가 바로 그 추계의 해였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 임기 내에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취지이다. 그렇다면 국민연금 가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보험료 동결을 쌍수 들어 환영하고, 또 돈이 굳어졌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하며 좋아해야만 하는 걸까?
ⓒ한국일보
이에 대한 해답은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를 보고 판단해 보자. 그에 따르면 2044년 쯤 국민연금 기금이 적자로 돌아서게 되고, 2060년이면 완전히 소진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무려 5년간 보험료의 동결을 결정할 만큼 여유 부릴 시간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 부담, 결국 젊은 세대에게 떠넘기나
보험료를 마땅히 올려야 할 적절한 시기에 올리지 못하게 되면 그에 따르는 부담은 오롯이 후세대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보험료가 동결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인상 압력은 커져갈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의 부담은 결국 20-30대 등 젊은 세대들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보험료 동결 결정은 기초연금과의 연계로 인한 국민연금 기존 가입자들의 심리적 동요를 당장에 차단시키는 눈 앞의 효과는 볼 수 있을지언정, 곧 다가올 기금 고갈에 대한 부담을 우리의 젊은 세대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일종의 폭탄 돌리기인 셈이다. 폭탄을 떠안게 되는 세대들이 달가워할 리 만무하다. 때문에 국민연금이란 뜨거운 감자를 사이에 두고, 정부의 뜨뜨미지근한 정책과 판단으로 인해, 또 다시 세대간의 갈등이 불거질 개연성마저 다분해지고 있다.
가시적인 화려한 성과를 내는 일엔 팔 걷어부치며 뛰어들던 정부가 정치적으로 부담스럽거나 껄끄러운 사안에 대해선 나 몰라라 회피하려드는 기색이 역력하다.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에 따르는 부담을 이번 정부에서 떠안기 싫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차기 정부로 부담을 고스란히 떠넘기겠다는 심산이다. 물론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공약 후퇴, 국민연금 보험료 동결로 이어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연계된다는 설이 파다해지자 국민연금 임의가입자들의 동요가 시작되어 7개월 사이 무려 2만명 이상의 가입자가 탈퇴한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히 국민연금 가입자가 기초연금을 덜 받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난 이후에 나타난 결과다.
때문에 실제로 공약이 후퇴하고, 기초연금이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되면서 기초연금 수령액을 손해본다고 느끼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탈퇴 행렬이 이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 하는 정부의 마음,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이와 같은 미래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기도 하다.
최근 청와대와의 불화설과 항명 파동을 빚은 바 있는 진영 전 복지부장관이 지난 6일 정부가 국민연금 성실가입자에게 역차별이 돌아갈 수 있는 현재의 기초연금안을 강행할 경우 국민연금 가입자 100만 명의 집단 탈출이 예상된다며 강력 경고하고 나섰다. 실제 진영 전 장관의 경고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부 또한 이를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일 것이다.
후보시절부터 줄기차게 국민행복론을 설파해 왔던 박근혜정부다. 어렵다고 피해갈 사안이 분명 아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국민을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 대안을 제시했어야 함이 옳다. 껄끄럽다고 하여 피해간다면 그에 따르는 피해와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의 몫이 된다. 기초연금 공약 후퇴와 더불어 당장의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자세는 책임 있는 정부의 태도로서도 결코 옳지 않다.
박 대통령, 취임한 지 이제 8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정치적인 논쟁이 있거나 껄끄러운 사안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해 오고 있는 박 대통령의 모습을 우린 숱하게 봐왔다. 여전히 임기 초반이거늘 논쟁으로 야기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여 현실을 자꾸 외면하려 든다면, 4년 이상 남은 임기, 어떤 미래가 펼쳐지게 될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정부는 다음 정권과 후손에게 폭탄 돌리기와 진배 없는 행위를 당장 멈추고, 그 폭탄을 스스로 떠안아야 함이 옳다. 당장의 소나기를 피하려다 오히려 초대형 태풍을 만나게 될런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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