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희대의 내란음모인가 국면전환용 물타기인가

새 날 2013. 8. 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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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아침에 날아든 벼락 같은 소식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6일 박 대통령의 국정원 사태에 대한 꼿꼿한 태도의 입장 표명 발표를 바라보며 대충 향후 정국의 밑그림이 그려지긴 한 상황이지만, 이날 득달 같이 발표된 통진당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를 보며 나의 예상치를 벗어나도 너무나 벗어난 강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통진당 내란음모 사태

 

언론에 보도된 내용으로만 보자면, 내란음모 혐의자들은 완전 테러분자인 셈이다.  놀랍다.  21세기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 이러한 일이 과연 가당키나 하던가.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들 모두는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어떤식으로든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종결지으려 시도할 것이란 예측은 누구나 가능했을 것이다.  26일 대통령의 발언이 이미 그 신호탄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앞서 있었던 김기춘 비서실장의 임명을 놓고선 박 대통령의 향후 통치 방향에 대한 어림 짐작이 가능했다.  왕실장의 화려한 과거 전력으로 인해 당시 많은 이들이 유신으로의 회귀를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이 워낙 무거워(?) 그 의중을 파악조차 힘들었던 박 대통령의 패가 이젠 제법 정확히 읽힌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의해 촉발된 부정선거와 이후의 촛불정국을 통진당 내란음모라는 사건을 통해 국정원 스스로 마무리지으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이번 통진당 사태의 진원지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지난해 대선 정국에서 멈추게 된다.  두 차례의 대선 후보간 TV 토론에서 이뤄진 박 대통령과 통진당 이정희 대표 사이의 설전이 결국 씻어내리기 어려운 감정의 찌꺼기로 남아 통진당의 내란음모 사태로까지 발현된 듯하다. 

 

대선정국 TV토론에서의 악연, 치밀한 사전 물밑작업

 

이번 작품(?)을 위해 박 대통령은 치밀한 물밑 작업을 진행해온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촛불정국이 점차 달아오르는 와중에도 박 대통령은 꿈쩍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며, 개성공단 사태에 대해선 북측에 위압적인 으름장을 놓으며 벼랑끝 전술을 펼치다 결국 최근에서야 타결을 이끌어내었다. 

 

그 사이 박 대통령은 김기춘 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진들의 대폭적인 물갈이를 통해 친정 체제를 더욱 공고히하였으며, 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선 어떠한 화답의 신호조차 없이 평행선을 달리다 마치 민생에 올인하겠다는 듯 뜬금없는 민생투어를 실시해왔다.  국정원 부정선거 사건 국정조사는 여권과 증인들의 합작을 통해 결국 파행으로 종결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60% 언저리에서 오르락 내리락 할 정도의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었다. 



취임 6개월을 맞이하며 각 언론사에선 70%에 육박하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일제히 발표하였으며, 그를 신호탄으로 박 대통령 자신은 국정원으로부터 선거에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았다며 스스로의 입을 통해 밝힌다.  그로부터 정확히 이틀후 통진당 내란음모 사태가 터졌다. 

 

더군다나 이번 통진당 사태의 수사를 주도한 건 다름아닌 부정선거 논란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주인공 국가정보원이다.  이들이 이번 사태의 전면에 나선 건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우선 대북심리전이나 종북세력들의 색출과 척결을 위해 자신들의 고유 역할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속내가 보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 시기일까?

 

국정원 국정조사가 자신들이 의도한대로 파행으로 끝났고,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이 되는 시점이며, 7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등에 업고 촛불정국을 끝내 박 대통령 자신과 국정원을 둘러싼 부정선거 논란으로부터 확실하게 벗어나고자 함이다.  한 마디로 물타기라는 의미이다.

 

국정원이 전면에 나선 이유는?

 

선거에 개입하여 개혁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국정원이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용어를 써가며 자신들이 직접 수사를 맡았다는 건 결국 이번 기회를 이용해 오명을 벗고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취지로 읽힌다.

 

국정원은 통진당의 기밀(?)을 취득하고 난 뒤 이번 수사 결과를 언제쯤 터뜨리면 좋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저울질 해왔음에 틀림 없다.  촛불정국에서 국민들로부터 국정원을 해체해야 한다는 원성까지 들으며 그토록 난타를 당하는 와중에도 오늘의 결과만을 기다리며 꿋꿋이 버텨왔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려 한다.  정말이지 국정원의 인내심 하나는 높이 사주고 싶을 정도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그토록 모진 시기를 오로지 기회만을 엿보며 기다리다가 마침내 터뜨렸을 때의 희열은 보지 않더라도 어떤지 짐작 가능하다.  국정원을 해체하라는 주장의 수모 끝에 국가 전복 내지는 내란이라는 대어를 낚았으니 얼마나 사기가 충천할까.  인생 대역전이란 드라마는 바로 이를 두고 일컬음이리라. 

 

물론 수사를 진행하고 추이를 더 살펴봐야 알겠지만, 만일 혐의사실이 모두 사실이라면 통진당 사태와 연루된 이들은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허나 만에 하나 이 또한 물타기 공작을 위한 허위사실로 밝혀지게 된다면 현 정권은 아마도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초유의 어마어마한 역풍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이번 통진당 사태는 말그대로 희대의 내란음모인지 아니면 회심의 물타기용 공작인지에 따라 정국의 방향은 정 반대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박 대통령의 결자해지 방식은 정말로 문제가 많다.  자신이 국정원의 도움으로 당선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거늘 그 부분에 대해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를 오히려 통진당 사태로 덮어버리려 시도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설사 이번 통진당 사태가 모두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하여 국정원의 대선 개입으로 인한 부정선거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는 분명 아니란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희대의 내란음모? 물타기 공작? 퇴행하는 우리 정치

 

어쨌든 박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의 입장에선 이번 통진당의 혐의가 모두 사실로 밝혀지건 그렇지 않건 간에 국면 대전환이란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을 듯하다.  우선 혐의가 모두 사실일 경우 대대적인 종북세력에 대한 탄압과 색출이 예상된다.  부정선거에 대한 얘기는 한동안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그들이 공세 국면을 취할 수 있는 이유이다. 

 

반면 혐의가 모두 사실이 아닐 경우라도 일단 국가보안과 관련한, 그것도 내란 음모라는 거대 떡밥을 던져 놓은 셈이니 촛불정국에서의 수세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국면 전환용 물타기로서는 손색이 없다.  종국엔 "아님 말고" 라는 우리 정치권만이 가진 전통의 필살기로 교묘히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뒤늦게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국가보안이란 우리만의 특유의 파급 효과로 인해 이미 그들이 목표로 한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게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통진당 사태로 인해 우리 사회가 또 다시 이념 논쟁이란 덫에 갇혀 서로 헐뜯고 물어뜯는 아비규환의 상황이 연출될 것이란 점이 가장 우려스럽고 개탄스럽다.

 

결국 우리 정치는 과거와 견주어볼 때 한 치의 진전도 없이 오히려 7,80년대 시대로 퇴행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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