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을 보고 계신 당신, 만일 남성이시라면 화장품은 주로 어떤 종류를 사용하고 계신가요? 스킨과 로션 그리고 조금 더 신경 쓰시는 분이라면 자외선 차단제 정도? 만약 그렇다면 당신께선 이미 시대 조류에 한참 뒤처지고 계신 겁니다.
한국, 세계 최대 남성화장품 시장으로 등극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남성 화장품 시장으로 급 부상하였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소비된 남성화장품 5개 중 1개는 우리나라에서 팔린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한국 남성이 화장품 구입에 5527억 원, 피부관리 매출액까지 포함할 경우 6300억 원을 지출하여 전 세계 남성화장품 매출액의 21%를 차지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2위는 일본으로 조사됐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2900억원으로 나타나 우리의 막강한 화장품 구매 파워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성인 남성 인구는 고작 1900만 명에 불과한데 남성화장품 시장 규모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매우 이례적인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남성 1명당 화장품 구매액에서도 우리나라는 당당히 1위를 차지합니다. 절대적 기준인 매출액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였으니, 상대적 기준인 남성 1인당 화장품 제품 구입액에서의 1위, 너무도 당연한 결과겠지요? 우리나라는 1인당 11.3 달러의 규모였으며, 2위인 덴마크의 4.7 달러에 비해 두 배 이상 앞서는 월등히 큰 금액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남성들의 "꽃미남 열풍"은 무죄?
화장품이라곤 로션과 스킨 외에 바를 줄 아는 게 없는 저도 실은 시대 조류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미개한 종자였던 셈입니다. 요즘 남성들, 단순히 로션과 스킨만 바르는 게 아니라 안티에이징이나 미백 등 기능성으로 알려진 고급화장품과 여러 기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올인원 제품 등 보다 다양한 요소가 가미된 제품을 선호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 같은 사람은 금남구역인 듯하여 왠지 접근하기조차 어렵게 느껴지는 화장품 매장마저 과감히 출입, 자신에게 맞는 제품이 무엇인지 직접 알아보고 구매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합니다. 에센스, BB크림, 아이크림 등을 찾는 남성들도 부쩍 늘어 이젠 여성 못지 않은 화장품 사용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미용과 패션에 관심 있는 남성들이 늘어나다 보니 화장품 제조업체들마다 앞다퉈 고급 브랜드로 무장, 갖가지 기능성 제품들을 선보이며 남성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남성들의 예뻐지기 열풍은 "꽃중년 남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남성화장품 시장을 매년 13-14%가량 쑥쑥 성장시켜오고 있는 것입니다.
무뚝뚝하며 까칠한 피부에 시꺼멓게 그을린 얼굴, 외모 따위엔 영 관심 없을 듯 하던 대한민국 남성들이 화사하게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고급 화장품을 취사 선택 사용하며, 피부관리실에도 들러 주기적으로 피부를 관리할 줄 아는 보다 똑소리나고 세련된 대한민국 남성들의 예뻐지기 열풍, 과연 무죄인 걸까요?
남성 화장품 소비 증가의 씁쓸한 이면
국가가 직접 나서서 개발을 주도하던 시기,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려는 취지와 정부의 치적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로 자주 인용되던 것이 "세계 최초" 내지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는 21세기인 지금도 바뀌지 않고 여전하긴 합니다. 때문에 뭐든 빨리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국민성과도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이 매번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우린 얼마전 우리나라의 성형 시술이 세계 1위에 랭크되며 전 세계적으로 "성형대국"이란 비아냥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모 지상주의가 낳은 괴물, 성형 열풍은 이러한 잇단 경고신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황중이며, 오히려 해외에 수출마저 이뤄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젠 여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외모 열풍이 남성들에게까지 전이된 모양입니다. 남성 화장품 소비 세계 1위라는 타이틀마저 거머쥐었으니 하는 말입니다. 전 세계에서 제조된 남성 화장품의 21%를 이 땅의 남성들이 싹쓸이한 것입니다. 우리의 남성인구수는 중국이나 미국, 일본 등에 비한다면 턱없이 작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화장품의 소비는 이들보다 월등했습니다. 한국 남성들이 화장품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세계 화장품 업체들 모두 문을 닫아야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이쯤되면 한국 남성들이 세계 화장품 업체들을 먹여살리고 있는 셈입니다.
예뻐보이고 싶은 건 남성, 여성을 떠나 모든 이들의 기본 욕망입니다. 아울러 예뻐보인다는 건 그 만큼 주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고, 기분까지 화사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예뻐보이기 열풍은 그러한 측면에서 무죄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춰보면 그렇게 긍정적인 측면만이 도드라지진 않습니다. 뭐든 정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외신에서 먼저 이를 간파하여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신호에서 "한국은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말이 통용될 만큼 치열한 경쟁 사회이다" 라며 한국이 남성화장품 중심지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직장내 생존경쟁과 취업 및 구직난 심화를 원인으로 꼽고 있었습니다. 결국 한국의 남성들도 여성들처럼 생존 전략 차원에서 적극적인 화장품 사용을 고려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얼마전 우리사회에서 "삼성형 얼굴"이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적이 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삼성 같은 대기업들은 눈이 또렷하면서도 선한 인상을 좋아한다"고 하여 이에 맞추기 위한 화장은 기본이고 심지어 성형수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얼굴엔 공통점이 있어서 그와 비슷하지 않으면 취업이 어렵다는 속설에서 비롯된 해프닝입니다. 구직난이 워낙 심각하기에 스펙은 기본이고 이젠 외모마저 경쟁요소라 판단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결국 남성에게도 여성에 준하는 "예쁜 남자"란 외모 잣대를 적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와 같은 풍조를 양산한 셈입니다. 물론 TV 등 미디어매체를 통한 예쁜 남자 열풍도 이에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다는 점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화장품 소비 세계 1위라는 타이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러한 연유들 때문에 마냥 좋아할 만 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의 치열한 경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여 이 역시 씁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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