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창립, 정치적 지향점 "진보적 자유주의"를 선언하며 정치 세력화를 위한 물밑 움직임이 활발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다소 지리멸렬해 보였던 안철수 의원의 기대감이 조금이나마 살아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 정국이 그에겐 독이 된 듯합니다. 이를 거쳐오면서 그의 존재감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희미해져갔고, 그에 거는 기대감 또한 급전직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0일엔 그가 작심한 듯 국정원 국정조사와 관련, 보도자료 형식을 빌려 "국정조사 청문회 현장의 낡은 정치행태에 개탄을 금치 못합니다"란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그가 보여온 국정원 정국에서의 유체이탈형 행보로 비춰볼 때 이번 성명서 발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성명서에서 안 의원은 “증인청문회장에서 보여 준 여야 간 상호 정제되지 않은 막말공방은 반드시 고쳐야 할 낡은 정치행태다. 특히 새누리당 소속 특위위원이 증인으로 나온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게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라고 질문한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국가정보기관이 민주주의를 침해하고 국기문란 행위를 한 중대한 사건을 조사하는 국정조사 청문회장에서 이처럼 후진적 발언이 나온 것을 국민은 결코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국정원 국조, 여권에겐 자칫 정권의 명운을 가르게 될지도 모를 중차대한 상황이었던 만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방어막을 구축, 이를 파행으로 이끌려 시도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볼 때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사전 각본에 의해 짜맞춘 듯 일사분란하며 현란한 그들의 움직임에 그저 감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오고간 막말에 대해 안철수 의원이 낡은 정치의 전형적인 행태라는 지적과 함께 비난한 부분에 대해 충분히 수긍이 가며,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명서라는 거창한 형식에 비춰볼 때 그 내용은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는 듯하여 솔직히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왜 국정원 사건에 대한 본질과 이에 따른 국조 파행 결과에 대해 근원적인 비판은 외면한 채 고작 막말 발언에 대한 성토만을 했을까요? 게다가 야권과 여권을 싸잡아 비난한 듯한 표현에선 그가 흔히 사용해왔던 표현 양태 중 하나인 양비론의 형태마저 띤 듯하여 여전한 그의 모호한 정체성에 답답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이제껏 그래왔듯 중간지대에 서서 양 진영을 모두 놓치지 않으려는 그만의 색채를 여실히 드러낸 셈입니다. 모호함의 정체는 바로 이러한 그의 평소 태도에서 기인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편, 최근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최장집 교수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며 안철수 의원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위축된 모습입니다. 과거 안철수 의원의 주변에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등이 그의 멘토 역할을 해왔었으나 이들 모두 안철수 의원의 곁을 홀연히 떠나고 맙니다. 그에겐 측근들과의 잇단 결별로 당장 코앞에 닥친 10월 재보선과 신당 창당 일정에도 빨간불이 들어온 셈입니다.
비단 이러한 이유들뿐만이 아니더라도 안철수 의원의 여전하기만 한 무색무취의 행보로 인해 많은 지지자들이 피로감을 호소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사건으로 정국이 요동칠 때에도 뒷짐만 지고 있던 안철수 의원, 결국 그의 존재감은 타오르는 촛불에 가려 더욱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에겐 작금의 위기를 벗어날 획기적인 타개책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국정원 국조 청문회의 파행 모습을 보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비난을 통해 그의 존재감을 알리는 기회로 삼고 싶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여권과 야권을 싸잡아 비난하는 그의 양비론은 현재 처해진 그의 애매한 위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가 이번 성명에서도 언급한 낡은 정치의 반대편에 서있는, 그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새정치의 모습, 여전히 어떤 형태인지 뜬구름 잡듯 두루뭉슬하기만 합니다.
이번 성명은 위기라면 위기일 수 있는 현 정치적 상황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통해 지지자들을 다잡기 위한 몸짓 쯤으로 보여집니다. 처음보다 낮아진 그에 대한 기대감을 어떻게 만회할 것이며, 그의 어정쩡한 태도에 상당한 피로감을 보이고 있는 지지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런지는 전적으로 향후 그의 행보에 달려 있습니다. 그가 지난 대선 때처럼 과연 다시 한 번 야권의 기대주로 급부상할 수 있을지 기대감과 우려가 서로 맞물려 교차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예전에 비해 무게추가 우려 쪽으로 상당 부분 기울어져있는 게 현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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