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일하기 위해 사는 걸까 살기 위해 일하는 걸까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

새 날 2018. 5. 2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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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절벽의 시대다. 직장생활이 고달프다며 하소연하는 직장인들이 주변에 즐비하지만, 여전히 취업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 한 취준생 신분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이는 마냥 배 부른 소리로 들려올 법도 하다. 공동체 어딘가에 소속되고픈 욕구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작용하는 기제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주인공 아오야마에게는 이러한 욕망이 더욱 절실한 것으로 읽힌다. 


자신이 발을 디딘 채 경제 활동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 취업을 원하던 그였다. 절실하면 이뤄진다고 했던가. 아오야마는 다행히 모 회사 영업부서로의 취업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어렵다던 좁은 관문을 통과한 기쁨도 잠시, 그는 지속되는 야근과 강압적인 조직 분위기에 치여 입사한 지 불과 수 개월만에 문득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다. 


일이란 우리 삶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할까?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인간은 일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일하는 것은 인간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을 하지 않고도 필요한 것을 전부 손에 쥘 수 있다면 우리는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을 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일을 하지 않고서는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없기에 결국 살아갈 수도 없다. 때문에 사실상 보통사람인 우리에겐 일을 하느냐 아니면 일을 하지 않느냐에 대한 선택권 따위는 전혀 주어져 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영화속 주인공 아오야마는 혹독한 노동 환경 속에서 넋이 반쯤 나간 채 일을 하다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과연 일하기 위해 사는 걸까 아니면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걸까. 


그렇다면 일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부류일까? 우리는 일이 너무 좋아 자발적으로 일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주변에서 간혹 접하게 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삶의 거의 전부를 일에 매달리다시피 하고 있는 셈이기에 말 그대로 일을 위해 산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서두에서 언급한 영화속 주인공 아오야마의 사례나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자발적인 일 중독이 아닌 가혹한 노동 환경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상황이라면 일을 위해 산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즉, 일과 그 밖의 생활이 적절하게 균형이 이뤄지지 않은 채 지나치게 일에 몰두하는 이들, 반드시 일을 해야 하지만 일이 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는, 살아가기 위해 일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오야마가 일하기 위해 사는 것 같다고 읊조린 건 개인 생활이 거의 없다시피할 정도로 혹사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비웃는, 일종의 자조적인 표현에 가깝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한 장면


그러니까 반드시 일을 해야 하나 마치 일이 삶의 전부인 양 다가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살기 위해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일을 위해 사는 것과 같이 삶의 무게를 견디기 어렵고 영 팍팍하게 다가온다는 의미다. 물론 여기서의 '살기 위해'라는 표현은 단순히 생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실은 어떨지 모르나 이론적으로는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매우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걸까?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의 저자는 아들러 개인 심리학의 전도사답게 아들러의 이론을 통해 이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일을 함으로써 자신이 지닌 능력을 타인에게 사용하고 공헌하는 존재다. 이렇듯 일을 통해 공헌감을 느끼는 인간은 비로소 자신이 가치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교우와 사랑으로 대변되는 인간관계 안으로 들어갈 용기도 이때 생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까닭에 인간관계 속에 있을 때에야말로 살아가는 기쁨을 느끼고 행복해질 수 있다. 즉,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공헌을 하고, 자신의 가치를 깨달으며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비로소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논리다. 이 지점에서 주의해야 할 건 인간의 가치란 생산성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인간의 삶은 반드시 효율적일 필요가 없으며 천천히 에둘러 가도 좋다고 저자는 힘주어 주장한다. 


일이란 삶을 영위하는 행위 가운데 하나다.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과도한 부담을 느끼거나 자기답게 살기 어렵다면 그 일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우리 삶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과 관련하여 도대체 일을 왜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직장 내에서의 인간관계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지, 마지막으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따위를 각종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시간 단축이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벌써부터 이를 놓고 누군가에겐 삶의 질을 높여주는 선물이 되겠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오히려 삶을 더 팍팍하게 해줄지 모르는 양날의 검이라며 치열한 여론전이 펼쳐지고 있다. 혹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자는 담론이 쏟아질 때마다 이처럼 노사 양측은 팽팽하게 맞서 왔다. 최저임금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자 하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성만큼은 조금 더 뚜렷해진 것으로 읽힌다. 고무적이다. 이런 시점에서 이 책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일에 치여 사느라 애써 간과해 왔던 일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보게 해준다. 


우리는 과연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걸까, 아니면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걸까?



저자  기시미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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