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이 시대 진정한 어른이란 '리틀 포레스트'

새 날 2018. 5. 2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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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해 오던 혜원(김태리)은 시험에 낙방한다. 혜원과 함께 시험을 치른 남자친구의 합격 소식은 그녀를 더욱 의기소침하게 하는 유인이 되게 한다. 결국 짐을 싸서 고향집으로 내려오고 만 그녀다. 잠시 쉬어갈 요량이었다. 도시 생활에 지친 그녀에겐 당분간 휴식이 필요해 보였다. 다행히 어릴 적 함께 자란 또래들 몇몇도 이곳에 터를 잡아 살고 있어 그나마 외로움은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가운데서도 지역의 단위농협 점포에서 텔러로 일하고 있는 은숙(진기주)이 혜원을 가장 반겼다. 은숙은 혜원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고달프고 싫었다. 조그마한 시골 단위농협 점포에서 쳇바퀴 돌듯 생활하는 게 영 갑갑하기 만했기 때문이다. 도피하고 싶었다. 일탈하고 싶었다. 이렇듯 은숙은 조금 더 멋진 삶을 꿈꿔보지만 현실은 언제나 꼰대 같은 상사 밑에서 잔소리를 들어가며 커피를 나르고 창구에서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게 전부였다. 



도시에서 농학을 공부하고 일찌감치 귀촌, 청년 농부의 꿈을 일구고 있는 재하(류준열)는 혜원에겐 든든한 우군이다. 물론 은숙에게도 마찬가지다. 혜원은 직접 심고 가꾸며 수확한 제철 식재료를 이용하여 어릴적 엄마(문소리)로부터 배운 요리법을 십분 활용, 건강하고 맛깔난 음식을 만들어 끼니를 해결하거나 때로는 친구들과 어울려 이를 맛보며 쉼을 이어가는데...



이 작품의 원작은 일본의 인기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로 알려져 있다. 도시에서 알바를 전전하며 취업 준비를 해 오던 취준생 혜원은 되는 일이 하나 없자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고향집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곳에서 식재료를 직접 심어 가꾸며 음식을 만들고, 또래들과 함께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지내 오면서 삶에 대해 스스로 터득하고 건강하게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혹자는 혜원과 혜원의 엄마가 만들어내는 음식과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힐링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제철 식재료로 만들어낸 맛있는 음식은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과 귀가 즐거워지게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요리할 때마다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맛깔스러운 소리는 아름다운 영상과 섞일 때마다 공감각적 심상을 불러일으키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4계절을 골고루 담아낸, CG가 전혀 첨가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무공해 영상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편안한 쉼을 제공해준다. 



혜원이 직접 담근 막걸리를 친구들과 나눠 마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고, 한밤중에 개울에서 다슬기를 잡다가 또 다시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어릴적 즐겨했을 법한 장난에 빠져드는 모습은 비록 허구인 데다가 아무 것도 아닌 듯싶지만 그들의 일상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으로 다가오게 한다. 아름답고 편안한 영상미만으로도 이 영화는 사실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일상에 찌든 마음을 자극적이지 않은 영상과 이야기를 통해 잠시 동안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혜원의 성장 배경과 과정이다. 혜원의 엄마는 그녀가 성인이 됨과 동시에 아무런 기별 없이 그녀의 곁을 훌쩍 떠났다. 혜원은 그런 엄마가 야속하고 이해되지 않았으나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집에 내려온 뒤로 4계절을 몸소 겪으면서 엄마의 부재가 비로소 헤아려지기 시작한다. 엄마는 어린 혜원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일찌감치 지혜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요리 레시피로 묘사된 바로 그 지혜 말이다. 이를테면 훌륭한 식재료로 성장시키기 위해 튼튼한 씨를 뿌려놓은 셈이다. 



혜원은 엄마로부터 배운 지식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엄마보다 한 걸음 앞서기 위해 자기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을 벌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시간이 흐르면서 혜원은 비로소 홀로서기가 가능해진다. 만에 하나 엄마가 혜원의 곁에서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 시시콜콜 참견하고 도움을 주었다면 혜원의 지금과 같은 건강한 홀로서기는 에초 불가능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에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진정한 어른이라면 청년들에게 노오력이 부족하다며 채근하고 독촉하기보다 곁에서 조금 떨어져 그저 바라보며 그들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조용히 응원하는 게 바람직스러울 테다. 그러니까 혜원 엄마 문소리의 역할은 결국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어른의 덕목 같은 것이리라. 



삶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이 세상은 왠지 우리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꾸만 정답을 요구하는 것 같다. 어른들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라며 훈수를 두기 일쑤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생각도 다르듯이 가치관 또한 저마다 모두 다를 텐데, 왜 이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은 한결 같기 만한 걸까? 이 영화는 이러한 기성세대의 생각과 삶의 가치에 반기를 든다. 


혜원의 삶, 은숙의 삶 그리고 재하의 삶이 각기 다르듯이 남들과 조금은 다르더라도 청년 각자가 정한 삶의 방식을 응원한다. 스스로가 터득하고 성찰하며 성장해가는 젊은이들을 응원한다. 물론 나 또한 그러한 젊은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감독  임순례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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