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갑질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는 덕목 '말의 품격'

새 날 2018. 5. 2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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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말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미디어 시대인 요즘 말 잘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든 환영을 받으며, 누가 봐도 매력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이렇듯 말하기는 언젠가부터 개인의 능력과 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각종 스피치 학원들이 호황을 누리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반대급부로 말을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함부로 사용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일부 위정자들이 내뱉는 독설과 인기인들의 정제되지 않은 그릇된 표현은 우리 모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곤 한다. 덕분에 세상은 더욱 더 자극적으로 변모해가는 와중이다. 


그러나 무심코 던진 한 마디의 말로부터는 그 사람의 인품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뛰어난 언변으로 교묘하게 위장하고 포장한다 해도 말이다.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말은 곧 품성이자 인격이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다고 표현한다. '품격'의 품(品)자는 입 구(口) 세 개가 모인 형상이다. 즉, 말이 축적되어 한 사람의 성품을 이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때문에 한 사람으로부터 뿜어져나오는 향기인 인향(人香)이란 그 사람이 구사하는 말로부터 비롯되는 경향이 크다. 



말과 관련한 고사성어나 격언 등은 유독 많다. 한 번 입 밖으로 새어나올 경우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말만이 지니고 있을 법한 고유한 특성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함일 테다. 이렇듯 말의 소중함은 워낙 많은 종류의 매체와 경로를 통해 강조되어 오던 터라 누군가에게는 자칫 뻔한 내용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격 없는 말이 횡행하는 요즘 이 책의 내용은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고 소중하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총 4개의 카테고리, 그리고 그 아래로 각각 존중, 침묵, 인향, 전환 등의 키워드 6개씩을 배치, 총 24개의 말과 품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의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데다 읽기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두 시간가량이면 완독이 가능하다. 영화, 인물, 고전, 도서 등 다양한 매체의 사례를 인용, 말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고 있다. 저자의 글솜씨가 뛰어나다는 건 누구나 이미 알고 있을 법한 내용들을 매우 설득력 있고 차분하게 재구성해놓았다는 점 때문일 테다. 말을 잘하기 위해 저자는 우선 귀부터 상대방에게 활짝 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역지사지의 가치관과 연결되며,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말은 자칫 날카로운 흉기로 돌변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아울러 과유불급은 여기에서도 통용된다. 즉, 말이 많으면 화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숙성되지 않은 즉흥적이며 가벼운 말은 오히려 침묵만 못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은 대개 말이 아닌 침묵 속에 깊숙이 자리하는 경향이 크다는 게 바로 저자의 생각이다. 


말이란 사람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 영원히 사라질 것 같지만 결코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무섭다. 돌고 돌아 결국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말이 자신의 귀와 몸으로 되돌아올 땐 그에 따르는 후폭풍을 감수해야 한다. 장난처럼 고작 주먹 크기의 눈덩이를 상대방에게 던졌으나 되돌아올 땐 눈사람보다 더 큰 덩어리로 불어나 있을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말이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가고 만 사람의 입으로 옮겨가는 무서운 존재다. 



이렇듯 저자는 익히 알면서도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말과 관련한 여러 생각들을 차분히 적어 내려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오는 건 갑언(甲言)과 관련한 사안이다. 우리 사회는 최근 한진그룹의 세 모녀를 둘러싼 갑질 논란이 한창이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의혹이 점차 확대되는 가운데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까지 한진가 세 모녀가 줄줄이 포토라인에 서게 된 것이다. 


조현민 전 전무는 '물벼락갑질'로 지난 1일 이미 경찰의 조사를 받았고, 24일에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 출입국 당국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어머니인 이명희 이사장은 하청업체 직원과 운전기사 등을 상대로 폭언과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으며, 곧 소환이 예정돼 있다. 


이들의 갑질 행각은 대중들의 눈살을 절로 찌푸려지게 한다. 직원들에게 물컵을 던지고, 하청업체에 폭언과 폭력을 일삼으며 삿대질을 하거나 서류를 던지는 등 '갑질 게이트'로 불릴 만큼 버라이어티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행위는 재벌가라는 이유로 직원들 위에 왕처럼 군림해도 된다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경향이 크다. 물론 갑질은 이들과 같은 재벌이나 사회 지도층의 전유물만도 아니다. 우리 또한 일상 속에서 무수한 갑질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카페의 사례를 들고 있다. 커피를 주문한 손님에게 직원이 뜨거운 것으로 할지 혹은 차가운 것으로 할지 정중하게 물었더니 되레 저속하고 신경질적인 단어들을 쓸어담으며 대답하더라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프랑스에 위치한 한 카페에 주목하고 있다. 이 카페에서는 예의가 부족한 손님에게는 커피값을 더 받고 있었다. 메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란다. 


커피 - 7유로

커피 주세요 - 4.25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 - 1.40유로


커피를 주문하는 고객의 '말의 품격'에 따라 가격을 차등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멋진 발상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갑질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의 갑질은 이미 일상화돼 있다. 역지사지의 가치는 온 데 간 데 없고 오로지 '손님은 왕'이라는 글귀에만 사로잡혀 있다 보니 손님은 어느덧 손놈으로 변모해 있기 일쑤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말의 품격'에서 언급되고 있는 글귀 하나하나는 따끔한 회초리처럼 다가오기 십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귀담아 듣고 실천해야 할 덕목 아닐까 싶다.



저자  이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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