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당신보다 내가 더 소중합니다 '나는 단호해지기로 결심했다'

새 날 2018. 5. 2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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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관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덕분에 우리는 친구, 친척, 직장, 지역 등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사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들 역시 이 인간관계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이 관계 때문에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셈이니 사람 사는 세상이란 참으로 아이러니한 곳이 아닐 수 없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심리는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종류의 것일 테다. 물론 사람마다 경중의 차이는 조금씩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손해를 입고 상처를 입은 채 뒤에서 몰래 가슴앓이를 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특별히 소중한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위계에 의한 불평등 관계에서 비롯된 연유로, 혹은 친한 관계를 훼손시키고 싶지 않거나 상대방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갸륵함 때문에, 막상 해야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선을 그어야 함에도 긋지 못 한 채 속앓이를 하곤 한다.


저자는 이들에게 단호해질 것을 주문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이다. 이 단호함이란 이기적인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단호한 사람들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단호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경계를 정해놓고 그 기준에 따라 전체를 위해 한 발 물러설지 말지를 결정하게 되나,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을 도무지 견딜 수 없어 동료가 어떻게 되든 상관 없이 오로지 자신의 밥그릇만을 챙긴다.



저자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갈등은 타인의 경계를 넘어 자신의 영역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경우로 보고 있다. 누구든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하면 불편하고 불쾌해지기 마련이다. 단호하지 못한 사람들은 바로 자신의 영역을 침범 당하면서도 앞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이를 표현 못 하고 우유부단하게 행동하기 일쑤다. 저자가 제시하는 처방은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 사이에 명확한 한계를 짓고 안 되는 건 안 된다며 단호해지라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 늘 손해만 보며 살아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나 자기 생각과 감정을 꾹꾹 누른 채 그저 착하고 온순한 모습만을 보여 주려고 애써 왔던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특별히 사람들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이득이 될 리 만무한 쓸 데 없는 곳에 시간을 쏟고, 감정을 소모하는 일 따위 없이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옮겨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조언한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핵심 어휘 가운데 하나인 '한계'는 그 쓰임새가 다분히 중의적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상호 간에 마땅히 존중하고 배려 받아야 할 경계선을 의미하며, 또 다른 햔편으로는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세력의 범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동안 인류는 한계와 맞닥뜨린 가운데 이를 극복하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해왔다. 도전과 응전의 역사란 다름 아닌 이러한 인류의 지난한 노력을 빗대어 표현한 것일 테다. 우리는 정확히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이를 받아들여야만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며칠 전 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간만에 모인 터라 술잔이 연거푸 돌았다. 난 적당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설 요량이었다. 숙취가 두려운 데다가 요즘엔 음주량이 예전만큼 많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계획은 친구들의 강압(?)에 못이겨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아니 실은 거절 못 한 나의 우유부단함 때문이다. 술자리를 옮길 때 함께 가자던 몇몇 친구들의 권유를 차마 뿌리치지 못 한 것이다. 



앞선 술자리에서 이미 친구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눴고, 다음 차수의 술자리에도 많은 친구들이 함께했기에 내가 굳이 빠져도 분위기는 깨지지 않을 만큼 충분히 화기애애했다, 나는 항상 이 모양이었다. 비단 이런 자리뿐만이 아니다. 단호해야 하는 상황에서 거절을 하지 못 해 질질 끌려다니다가 나중에 후회하기 일쑤였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의 끈끈한 관계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착한 친구로 기억되고 싶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판단에 나보다는 남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다. 굳이 함께하지 않아도 천지가 개벽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자신과 타인 사이가 너무 멀어지면 남남이 되고 너무 가까우면 다툼이 발생한다. 자신이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설정하고 그 선을 넘지 않도록 끊임없이, 섬세하게 거리를 조정해야 한다." 


작가의 이 짧은 문장 하나가 몹시도 사무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다음은 출판사 서평의 일부다.


이 책은 호감 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화가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힘들어도 괜찮은 척해 온 사람들, 나보다 남을 더 신경 쓰느라 정작 내 마음이 곪아 터진 것을 보지 못하고, 좋은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솔직한 감정을 억누르며 지금껏 혼자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 


어쩌면 그냥 일반론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실제로 적용하기엔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척하니즘' 혹은 '착한 아이 증후군' 따위의 고통을 나 홀로 겪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이렇듯 사람들의 섬세한 심리까지 파고드는 학자들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만으로도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내면을 어루만져주는 간접경험을 통해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단언컨대 당신보다 내가 더 소중합니다



저자  롤프 젤린

역자  박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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