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거리에서 사라지는 캐럴이 아쉬운 이유

새 날 2017. 12. 1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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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시즌이 연말임을 깨닫게 하는 징후는 여럿 있다. 붉은색 복장을 입은 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과 발걸음을 사로잡는 구세군의 덩그렁 거리는 자선냄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올 한 해도 벌써 끝자락에 이르렀음을 깨닫는다. 추위로 인해 두터운 옷차림으로 중무장하고 옷깃을 여민 채 굉장히 바쁜 듯 종종걸음을 걷는 도시인들의 모습 속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어렴풋이 전해져온다. 뿐만 아니다. 상점마다 화려하고 이쁘게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비롯한 각종 장식 등 주변 풍경을 통해서도 우리는 어느새 연말이 턱밑에 이르렀음을 직감한다. 동시에 마음도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명을 환히 밝힌 거리의 상점마다 스피커를 통해 경쟁적으로 내보내는 캐럴이야 말로 무엇보다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대표적인 신호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거리에서 이 캐럴을 듣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아마도 수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저작권료 때문이라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언뜻 접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면적 기준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상점은 캐럴을 내보낼 때 반드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 저작권료가 부담스러워 캐럴을 틀지 못한다는 게 최근 거리에서 캐럴송이 사라진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란다. 



그나마 일정 규모 이상으로 정해놓은 해당 기준이 내년부터는 더욱 까다로워져 전통시장을 제외한 15평 이상의 모든 상점들이 저작권료 징수 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니 더욱 암담해질 뿐이다. 가뜩이나 지금도 듣기 어려운 이 캐럴을 내년부터는 듣기가 훨신 어려워진다고 하니 말이다. 오호통재라. 


뿐만 아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저작권료 외에도 최근 캐럴을 듣기 어려운 이유 몇가지가 더 있다. 우선 갈수록 엄격해지는 소음 규제를 이유로 꼽는다. 물론 이는 다른 영역에서도 그런 것처럼 사회가 점점 복잡다단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에서 배회하게 되는, 곧 익숙해져야 할 사안일지도 모른다. 음반 시장의 변화와 대중의 음악 취향이 바뀐 사실도 캐럴이 줄어든 원인으로 꼽는다. 과거와는 달리 캐럴 음반을 내는 가수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줄어든 데다가 아무리 연말이라고 해도 캐럴보다는 그냥 일반 시즌송을 즐겨 듣는 대중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SBS


마지막으로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만능 기기 스마트폰도 빼놓을 수 없다. 스마트폰을 통해 혼자 음악을 듣는 계층이 늘어나면서 거리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로부터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없게 되고, 결국 상점에서도 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음악은 더 이상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거리에서 캐럴을 듣기가 어려웠던 이유가 단순히 저작권료 하나 때문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매번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던 이 캐럴이라는 음악에는 비단 크리스마스 분위기 만이 아니더라도 괜시리 마음을 설레게 하거나 가슴 벅차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짐작컨대 이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고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감성 내지 감흥과 관련한 요소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캐럴을 정 원한다면 다른 음악을 듣는 것처럼 이어폰을 통해 혼자서 조용히 들으며 기분을 만끽하면 될 일을 왜 특별할 것도 없는 일 가지고 이토록 호들갑이냐며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일한 음악이라고 해도 혼자서 듣고 느끼는 감흥과, 여러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분위기에 파묻혀 함께 감상하며 느낄 수 있는 감흥은 천지 차이일 수밖에 없다. 이를 굳이 다른 사례와 비교하자면, 축구 국가대표가 출전하는 월드컵 경기를 혼자서 조용히 TV를 통해 즐기는 것보다는, 넓은 광장에 한데 모여 커다란 전광판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즐기거나 그도 아니면 지인들과 호프집 같은 곳에 삼삼오오 모여 함께 시청하면서 환호를 내지르는 감흥이 훨씬 남다르게 다가온다는 사실과 비슷한 맥락이다.


대중들의 취향 변화나 스마트폰 등 개인 기기의 활용이 증가하는 건 말그대로 시대상의 변화에 따른 흐름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저작권료나 소음 규제 때문에 1년 가운데 크리스마스 시즌 단 몇일 동안 이를 내보내는 행위조차도 이젠 마음 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나치게 각박한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내심 씁쓸하고도 아쉽다. 어릴적부터,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인지 인지하기 시작한 이래로, 연말 시즌이면 캐럴을 통해 누리고 느껴왔던 아스라한 크리스마스의 감성을 앞서의 이유 때문에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은 정말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머리가 굵어지면서 어느 순간 크리스마스날 자신의 머리맡에 놓여있던 선물이 산타클로스가 아닌 부모님이 마련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고, 크리스마스에 대해 품었던 환상이 현실 앞에서 와르르 무너져내리던 그 순간과 다시 한 번 맞닥뜨리는 듯한 그러한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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