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들어 종이 위에 직접 글자를 기록해본 게 언제쯤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개인적인 기록을 남길 요량이든 아니면 업무적인 일을 처리하든 나 개인적으로는 언제부턴가 종이 위에 기록을 남기기보다 모니터를 켜놓은 채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하거나 액정 위 터치를 통해 기록하는 일이 훨씬 자연스럽고 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덕분에 가뜩이나 악필인 글씨체가 더욱 가관이 돼버린 지 오래다.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까 싶다. 그나마 요즘 아이들에 비하면 내가 조금 더 나은 편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가져야 할까? 독서는 또 어떤가. 무거운 책보다는 가벼운 전자책을 들고 다니면서 이를 이용하는 횟수 또한 훨씬 많아졌다. 더구나 전자책에는 수십 권, 아니 수백 권을 한꺼번에 넣어둘 수 있으니 이처럼 편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싶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하다. 이는 마치 스마트폰의 메신저 상에서 무수한 사람들과 대화를 거듭함에도 불구하고 왠지 더 외로워지는 느낌과 엇비슷한 감정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세상을 편리하고 영리하게 해주고 있지만, 그의 반대급부로 사람들을 그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이른바 스몸비족이라 불리는 형태의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 주변 곳곳에서 득시글거리는 것만 봐도 이로 인한 부작용은 만만찮다.
어쨌든 디지털의 완벽함, 세련됨, 빠름, 편리함이 우리의 생활을 좋은 방향으로 변모시키고 있음은 분명하나, 지나칠 정도로 가속도가 붙다보니 그에 따른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필름카메라와 흑백사진이 인기를 끄는 등 아날로그의 감성에 취해 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건 그에 따른 반작용 현상이다. 수년 전부터 인기를 끌었던 색칠 책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다가온다. 디지털의 득세로 이른바 손맛이 귀한 세상으로 변모하면서 이제는 거꾸로 이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무엇이든 구입할 수 있는 이 편리한 시대에 굳이 낚싯대를 펼쳐놓고 미끼를 던져 오랜 시간의 인고 끝에 어렵사리 물고기를 잡으려는 이유는 무얼까? 바로 손맛 때문이 아닐까? 의식주를 포함 웬만한 일들은 스마트폰이라는 도구를 통해 손끝의 터치만으로 이뤄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손맛만큼은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투데이
이 대목에서 더욱 두려운 건 스마트폰에 빠진 인류의 손이 점차 기형적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그리워하고 본능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건 언젠가부터 잊고 지내온, 어쩌면 바로 이 아날로그적인 손맛이 아닐까 싶다. 이의 흔적은 여러 갈래로 나타난다.
젊은이들이 ‘슬라임’이라는 점액질 형태의 장난감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보인다. 부드럽고 탄력 있는 이 장난감을 계속해서 조물거리고 만지작거리다 보면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의 위안을 찾게 된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이나 가지고 놀 법한 점액질의 놀잇감으로부터 다 큰 성인들이 힐링을 찾고 있다 하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손 글씨 열풍도 불고 있다. 세대 불문하고 이의 인기가 치솟고 있으나 근래엔 젊은 세대들의 관심이 부쩍 커져가고 있는 양상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대학가에서는 캘리그라피 동호회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관련 강좌에도 이를 배우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스마트폰의 메신저가 온갖 대화와 메시지 그리고 이모티콘, 이모지 등으로 폭발함과 동시에 전화 통화는 물론, 사람들과의 물리적인 접촉마저 줄어들게 하고 있다. 사람들과 직접 만나 손을 부여잡고 악수를 나누며 스킨십을 느낄 기회가 되레 줄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오늘날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른 동물과 달리 두 발로 서서 걸으며 손을 유용하고 교묘하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손 덕분에 진보를 거듭해올 수 있었건만,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이 손을 사용할 일이 갈수록 줄어들거나 자칫 기형적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을 우려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본능적으로 자꾸만 손맛을 갈구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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