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서열 경쟁이 빚은 무리수, 대학 평가 부정행위

새 날 2017. 6. 2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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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대학 평가기관 가운데 하나인 영국의 QS(Quacquarelli Symonds)가 지난 8일 세계 대학 순위를 발표했다. 그런데 2015년 461위, 2016년 386위에 이름을 올리며 1년 전보다 순위가 무려 75계단이나 껑충 뛰어올랐던 중앙대학교가 올해에는 명단에서 아예 제외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QS는 세계대학순위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공지사항도 함께 전달했다. 


“한국의 중앙대가 설문조사 보고서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러 세계대학순위에서 제외됐다. 2018년 QS 세계대학순위 발표에 앞서 설문조사 답변을 검수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답변이 중앙대에 이례적으로 유리하게 제출됐다. 조사 결과 학교에 유리하게 작성된 허위 답변들을 제출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중앙대학교는 실제로 QS의 평가 항목 중 졸업생 평판도 설문 조사와 관련하여 기업체 인사 담당자가 답해야 하는 항목을 교직원이 직접 작성하여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부정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학교 측은 이에 대해 "평가 실무 담당자가 순위 상승에 기여하려는 과욕과 오판으로 본인이 직접 졸업생 평판도 설문에 답을 입력했다"며 잘못을 시인했고, 곧 개최될 학교 징계 위원회를 거쳐 징계 조처가 내려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중앙대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는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각기 성명을 발표하고 총장단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좀처럼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양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측이 이번 사건을 단순히 일개 직원의 일탈로 받아들이고, 그의 징계로 무마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대학 측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본질을 크게 벗어난 느낌이다. 그보다는 왜 이러한 무리수가 빚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되짚어 봐야 하는 게 우선 순위에 놓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곳도 아닌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대학에서, 부정행위를 비롯한 그 이면의 무리수가 횡행하고 있다는 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면서도 낯설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온다. 


우리 사회에 학벌주의와 서열화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건 그 기원이 꽤나 깊다. 오랜 시간에 걸쳐 차곡차곡 쌓이며 탄탄하게 고착화됐다. 따라서 비단 해당 대학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한 번은 곪아 터졌음직한 일이 이번에 비로소 발생한 것뿐이다.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학교 측의 주장처럼 직원의 의욕 과다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든 그렇지 않든, 앞으로 그렇게 된 근본적인 문제를 찾고 이를 해결하려는 사회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학벌주의와 그로 인한 서열화는 우리 사회를 좀먹는 가장 큰 병폐 가운데 하나다. 수많은 모순들이 그로부터 기인한다. 뿌리 깊은 학벌주의가 대학을 줄세우기하며 서열화 구조를 완성시키고 있고, 출신 학교가 사회적 계층을 결정 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면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른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회 전체를 입시경쟁이라는 불구덩이 속으로 일제히 몰아넣으며 가계의 상당 부분을 사교육에 희생케 하는 기형적인 형태로 변모시켜왔다. 


대학의 줄세우기 문화는 오늘날 직장이나 고등학교뿐 아니라 심지어 유치원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회 모든 영역에서 줄세우기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따위의 대학 서열을 줄줄이 읊고 다닐 정도이니 왜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가 온통 이런 분위기 속에 휩싸여 있으니 대학들 역시 본질보다는 사회적 평판이나 언론 등 외부 평가기관의 평가에 더 귀를 기울이며 매달리고 있는 입장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은 대학의 애초 존립 목적과 내실을 크게 위협받게 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줄세우기 문화가 만연한 상태에서 우수한 학생을 영입하려는 대학들은 평가 순위를 높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이는 대학의 미래를 좌우할 내실 있는 투자보다는 오로지 당장 눈앞의 현실인 평가 그 자체를 위한 얄팍한 투자에 온 힘을 쏟는 암울한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진리를 탐구해야 할 공간에서 어느덧 순위권 안착을 노리며 공공연하게 부정행위마저 벌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처럼 모순적인 현상도 참 드물다.  


이번엔 비록 중앙대학교 한 곳이 부정행위로 망신을 초래했으나, 이 때문에 외국기관들이 우리나라 대학 전체를 싸잡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될 공산이 커졌고, 더 나아가 이러한 낙인 효과가 한국 사회 전체를 향해 불신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싶어 심히 우려스럽다. 학벌주의에서 비롯된 지나친 서열 구조와 경쟁이 사회 전체를 줄세우기하는 것도 모자라 어느덧 우리 대학들마저 순위 지상주의 속으로 매몰시키고 있다. 중앙대의 대학 평가 부정행위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 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 안타까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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