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섣불리 포용과 화해를 논하지 말라

새 날 2017. 6. 10.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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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은 6월 민주항쟁의 시발점이었던 날이다. 당시 학교별로 대회 참가 학생들이 각자 위치해야 할 구역을 사전에 지정해놓았었던 모양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 총학생회는 명동에서 모이기로 약속했던 바다. 정확한 시각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오후 2시 아니었던가 싶다. 학생들은 각자 적당한 곳에 숨어 있다가 손목에 손수건을 두른 학생이 거리 한 가운데에서 손을 번쩍 든 채 구호를 외치면 이를 신호로 일제히 뛰쳐나가기로 약속한 것이다. 학교에서의 출정식을 마친 뒤 우린 곧장 명동으로 향했다. 


약속된 시각이 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으나 명동 큰 도로는 이미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숨어 있을 필요도 없었고, 사전에 기획된 신호 같은 것도 큰 의미가 없었다. 시위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동 거리에 위치해 있는 행위만으로도 자연스레 시위대로의 합류가 이뤄질 만큼 당시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대단한 것이었다. 명동 한국은행 앞 도로는 학생과 시민들로 가득 메워졌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구호가 일제히 쏟아졌다. 하지만 평화롭던 분위기는 얼마 못가서 무너지고 만다. 현장에 경찰과 백골단이 투입되면서부터다. 


ⓒ노컷뉴스


최루탄을 뒤집어쓴 도심은 온통 희뿌얬다.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최루탄도 최루탄이지만 당시 학생들을 잡아가기 위해 투입된 백골단이 뿜어내던 아우라는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섬뜩함 그 자체였다. 최루탄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그들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력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얼마나 뛰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계속해서 내달렸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명동 골목길에서의 목숨을 건 숨바꼭질은 그날 해가 지고 난 뒤에도 계속됐다.


당시 거리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친구들을 6월 9일, 그러니까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일 전날 도심 한복판에서 만났다. 수 년만의 모임이다. 당시 최루탄의 매캐함으로 자욱했던 도심은 일상을 소일하는 소시민들로 가득했고, 그렇게 평화롭던 하루는 어느새 또 금방 저물어가고 있었다.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던 그 시각, 우리는 이름만으로도 벌써 친근하게 와닿던 모 감자탕집에 옹기종기 모여들기 시작했다.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다. 머릿고기와 얼큰한 감자탕을 주 메뉴 삼아 술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믿기 어려운 노릇이지만, 그날로부터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친구들 저마다의 삶의 궤적은 생김새만큼이나 정말 다양했다. 공무원이 되어 비교적 안정된 길을 걷고 있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한 회사의 오너가 된 녀석도 있었고, 기업의 중역이 된 녀석, 그리고 20년 이상을 한 곳에서 최선을 다해 버텼건만, 결국 회사로부터 언제 해고 통보를 받게 될지 알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린 녀석도 있었다. 실은 우리 나이쯤 되면 마지막에 언급한 사례가 가장 일반적이며 현실에 와닿는 상황 아닐까 싶다. 



최근 내 몸에 독주가 잘 받지 않아 순한 알콜 도수의 술을 마셔오던 터였는데, 이날은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쓰디 쓴 소주를 꽤나 잘 받아 마셨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오랫만에 얼굴을 맞댄 친구들이었던 만큼 그 존재감만으로도 너무 좋았던 때문이 아닌가 싶다. 30년이라는 세월, 이를 되돌아보면 극히 짧았던 시간인 것 같으나 급격히 변모한 삶의 여건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긴 여정이었음이 틀림없다. 삶의 토대가 예측을 불허할 만큼 급변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살아가기가 매우 버거워졌다. 덕분에 친구들의 고민도 더욱 깊어졌다.  


오늘 모 일간지 칼럼에 게재된 시론을 보니 6월 민주항쟁을 일군 이른바 386세대를 향해 몇가지 오류를 범했다며 또 다시 색깔론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386세대를 향해 철지난 급진주의 , 미래 없는 과거의 급진주의에 영혼을 내맡겼으며, 기성세대가 되어 불합리한 구조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넣은 채 과거의 투쟁을 휘장 삼아 현재를 합리화하는 양상을 보인다고도 했다. 


ⓒ미디어오늘


대부분의 386세대들은 87년 체제를 일궈냈노라는 자부심을 간직한 채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먹고사니즘을 염려해야 하는 건 여느 세대와 다르지 않다. 다만 과거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향해 돌을 들어 항거했던 것처럼 적어도 부조리와 부정한 세상 앞에서 만큼은 먼저 촛불을 들어 저항에 나선 것도 다름아닌 이들 386세대다. 물론 해당 일간지가 언급한 386세대는 그 가운데에서도 특정 세력을 콕 집어 지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안다. 아마도 문재인정부 핵심 요직에 발탁되면서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 일부 인물들을 거론하려는 듯싶다. 그들에게 포용과 화해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전가의 보도인 양 또 다시 새 정부를 향해 교묘히 색깔론으로 덧입히려는 치졸한 시도를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올라올 판이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우리가 6.10민주항쟁과 이번 촛불혁명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여 저들의 표현처럼 결코 이를 휘장 삼지는 않는다. 각자 생업에 종사하면서 우린 오늘도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과거의 급진주의에 영혼을 맡기거나 과거의 경험으로 현재를 합리화하는 일은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다만 부조리하고 상식적이지 못하며, 부정이 횡행하는 세상을 향해 언제든 과감히 촛불을 들고 저항할 준비는 되어 있다. 섣불리 포용과 화해를 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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