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침묵'을 원하는 세상, 얻거나 잃는 것들

새 날 2017. 6. 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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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 위치한 화장품 가게 앞을 지나다니다 보면 직원이 점포 밖으로 나와 호객 행위를 하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된다. 쇼핑 바구니를 쥐어주면서 친절하게 안내하는 직원이 반가울 때도 있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솔직히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옷을 사기 위해 의류 매장을 둘러보는 경우도 비슷하다. 직원이 특정 제품을 소개해주거나 지나치게 능동적으로 안내하는 바람에 오히려 그런 점포를 피해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누군가에게는 직원의 안내가 무척 반갑고 고마운 행위로 다가올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의지에 의한 쇼핑 활동을 방해하는, 일종의 훼방꾼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착안, 최근 일본에서는 '무언의 접객'이라 불리는 서비스가 확산 중이란다. 이는 직원이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 표현이 담긴 쇼핑백을 매장 입구에 비치해 놓고, 이 쇼핑백을 들고 물건을 고르는 고객에게는 직원이 다가가 인사말을 건네거나 특정 제품을 권유하지 않는 방식이다. 아울러 고객이 침묵해주기를 원할 경우 기사가 고객과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고 묵묵히 운전만 하는, 이른바 '침묵 차량'을 운영하는 택시 회사도 등장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선보였다. '혼자 볼게요'라는 문구가 쓰인 바구니를 들고 있을 경우 고객이 요청할 때만 직원이 다가온다. 반면 '도와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바구니를 들고 있을 경우 직원이 먼저 고객에게 다가가 제품을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고객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고려하고 배려해주는, 상당히 고마운 서비스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고객에게 다가오는 바람에 흡사 호객꾼처럼 비치거나 심지어 쇼핑 훼방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이를 호소할 데가 마땅치 않았는데, 이렇듯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니 그저 반갑기만 하다.


최근 인터넷뱅킹과 모바일뱅킹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사람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는 비대면서비스가 금융서비스의 핵심 플랫폼이 되고 있다. 덕분에 금융기관으로서는 새로운 환경이라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된 반면, 수익성이 낮은 점포를 폐쇄시키는 등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얻게 됐다. 뿐만 아니다. 아예 점포가 없는 인터넷은행이 새로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아직은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점포 운영에 따르는 비용을 줄이는 대신 시중은행보다 예금금리를 조금 더 높일 수 있는 여력이 있어 시장에서의 반응도 제법 뜨겁다. 


패스트푸드와 커피점 등 외식업계에도 직원과 접촉하지 않고 키오스크를 이용하여 주문을 유도하는 무인 주문 서비스가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얼마 전에 들른 유명 모 프랜차이즈 햄버거점에서는 주문이 키오스크를 통해 모두 이뤄졌고, 주방에서는 직원들이 주문 내역에 따라 차례로 음식을 만들어 내보내고 있었다. 편의점에도 조만간 무인 계산 서비스가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른바 4차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과학기술의 진보에 의한 과실은 이렇듯 우리 생활 속으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더 나아가 아예 사람이 근무하지 않고 인공지능로봇, 아울러 사람과의 접촉을 가능케 하는 매개 장치만이 덩그러니 놓인, 상당히 메카니컬한 점포에서 뭐든 필요한 행위를 해야 하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저출산의 여파와 결혼을 기피하는 문화 그리고 사회 저변으로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최근 1인 가구와 나홀로족이 크게 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현실을 더욱 앞당기는 유인으로 작용할 듯싶다. 이들의 증가는 우리의 생활 문화와 주변 모습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 혼밥, 혼술, 혼영 등 뭐든 혼자서 즐기는 서비스가 무척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웬만한 서비스는 휴대전화기 한 대에서 대부분 이뤄진다. 사람과의 접촉도 직접 만나기보다, 아니 심지어 직접 만난 상황에서조차, 휴대전화기 화면을 통해 문자나 이모티콘 등을 이용하여 대화를 주고 받는 세상이다. 편의성이 최고의 덕목으로 자리잡으면서 실제로 세상은 상당히 살기 편리해졌다. 쇼핑할 때 직원의 안내를 받기 싫으면 그에 해당하는 의사 표현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편안하게 쇼핑을 즐기면 된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와의 대화가 껄끄럽게 느껴지거나 귀찮게 생각된다면 '침묵 차량' 서비스를 이용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될수록 몸은 분명히 편해질 것 같지만 왠지 마음 한 구석이 허해지는 느낌이다. 가뜩이나 사람과의 접촉이 줄고, 많은 서비스가 대면이 아닌, 비대면 형식의 기계장치를 통해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른바 '무언의 접객 서비스'마저 호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은 반갑다기보다, 사람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소통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었던 정서적인 교감이나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환경이 되어가는 것 같아 오히려 두렵다. 


더구나 AI 기술의 진보로 점차 가속화되어가는 4차산업혁명이 이를 더욱 앞당기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게 틀림없기에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선다. 이런 상황에서 정에 굶주리고 정서가 메말라가는 현상의 반대급부로 이를 충족시켜주거나 부족함을 메우는 상업 서비스가 가까운 미래에 각광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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