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갤 가돗' 시오니스트 논란, 어떻게 봐야 하나

새 날 2017. 6. 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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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청소년 살해와 그에 따른 보복 살해에서 비롯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충돌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스라엘은 이를 빌미로 당시 팔레스타인들이 거주하던 가자 지구에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특히 이스라엘 방위군이 가자 지구의 민간인 대피지역에 가한 폭격으로 UN이 운영하는 학교가 완파되는 등 여성과 아동을 포함한 민간인들의 피해가 가장 극심했다. 국제적으로 금지된 무기 가운데 하나인 백린탄을 민간인 거주 지역에 퍼부음으로써 사망자가 2000여 명에 이르렀고, 이 중 500명이 넘는 희생자가 테러와 전혀 무관한 어린아이로 밝혀져 그들의 잔혹성을 여실히 입증시킨 바 있다.


이스라엘인들의 잔인한 성향이 가장 두드러졌던 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이른바 '스데롯 극장'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가자 지구에 인접한 스데롯 언덕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스라엘 방위군의 가자 지구 폭격 모습을 실시간으로 구경하면서 환호성을 내지르거나 박수를 치던 이스라엘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로데스크했다. 심지어 스데롯 언덕에 소파를 갖다 놓고 흡사 영화관에 앉아 가볍게 팝콘을 주워먹으면서 영화 관람하듯 팔레스타인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즐기던 행위는 잔인함의 끝이 어디쯤인지를 전 세계인들에게 아예 작정하고 각인시키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YTN 영상


그런데 최근 개봉한 영화 '원더 우먼'의 주인공 '갤 가돗'이 지난 2014년 가자 지구 폭격과 관련하여 자신의 SNS에 가자 지구 내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 '하마스'를 비판하는 글과 함께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사랑과 기도를 보낸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고, 아울러 이스라엘 방위군을 응원하는 해시태그를 남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시오니스트' 논란에 휩싸였다. '시오니스트'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인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사람, 즉 유대민족주의자를 일컫는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의 잔혹성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입증된 바다. 이에 세상 사람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나섰다. 스데롯 언덕에서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바라보면서 환호성을 내지르던 그들은 어쩌면 인간이 아닌,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췌 이게 무슨 노릇인가 모르겠다. 매력적인 비주얼로 현재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갤 가돗이 가자 지구를 향한 무차별 폭격 당시 악마 같은 행위를 일삼던 이스라엘 방위군을 향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니 말이다. 이쯤되면 천인공노할 노릇 아닌가. 미소를 지을 때면 유난히 아름다운 그녀였건만, 그 이면에 이토록 잔인한 속성이 존재하다니, 그렇다면 그녀 또한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아닐까? 



이러한 논란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자 현재진행형이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나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에 놓인 레바논에서는 갤 가돗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원더 우먼'이 아예 상영 금지 조치됐다. 갤 가돗의 시오니스트 논란은 레바논의 국민 정서상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으로, 거부 운동이 한동안 지속돼온 끝에 내려진 조치다. 이와 비중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두고 한창 논쟁 중이다. 물론 이해관계가 그리 크지 않은 까닭에, 아울러 현재 원더 우먼이 박스 오피스 1위를 굳건히 지키며 흥행 몰이 중인 터라, 해당 논쟁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공산이 농후하지만 말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옹호한 바 있는 갤 가돗이 지구촌 평화의 상징인 원더우먼 역을 맡아 활약하는 등 여성 히어로 캐릭터를 대표하는 인물로 굳어지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실존한다. 그녀의 활약이 자칫 팔레스타인 침공에 대한 정당성의 도구로 활용되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나 역시 팔레스타인을 무차별 폭격하고 그들의 고통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면서 환호성을 내지르던 이스라엘 방위군 및 이스라엘인들을 옹호하던 그녀의 태도가 가증스럽기 짝이없다. 이런 인물이 평화의 전사를 상징하는 배우로 자리매김된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2014년 가자 지구 폭격 당시 그녀가 이를 옹호하는 듯한 글을 남겨 시오니스트 논란으로 불거지긴 했지만, 정작 그녀 스스로 시오니스트임을 밝힌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본인은 정작 가만히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정황 근거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너무 쉽게 예단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여성 히어로라는 평화 전사로서의 상징성이 큰 원더 우먼 캐릭터를 모두가 의심하고 있는 것처럼 시오니스트의 신분으로 그녀가 이를 개인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면 혹시 모를까, 아직까지는 그러한 소식이 전해진 바도 없다. 그녀의 조국 이스라엘 역시 마찬가지다. 원더 우먼이 지닌 상징성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침공 정당화의 구실로 삼고 있다는 소식을 아직까지는 들은 바 전혀 없다.


원더 우먼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사람의 삶에 대해 지나치게 왈가왈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울러 과거에 작성한 SNS 발언 및 그와 관련한 예측만으로 미래에 대해 너무 쉽게 예단하고 미리 결론부터 내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생활은 사생활이고 영화는 영화여야 하거늘, 우리는 어느새 현실과 허구를 똑같은 잣대와 기준으로 맞춰 이를 억지로 등치시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 역시 그녀의 과거 행적이 몹시 탐탁지 않다. 잔혹한 이스라엘의 행위를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갤 가돗이라는 인물과 원더 우먼이라는 허구속 캐릭터를 동일시한 뒤 문화 상품마저 보이콧하는 일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하기 짝이없다. 갤 가돗 그녀의 직업이 배우인 이상, 아울러 작품을 통해 그녀를 만나게 된 이상, 연기력과 작품으로 온전히 그녀를 평가해야 함이 옳지 않을까? 적어도 작금의 상황에서는 갤 가돗 그녀의 사생활과 과거의 행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며 논쟁을 야기하기보다는 오롯이 그녀가 출연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객관적이며 생산적이지 않을까? 그녀의 건승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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