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기술의 발전이 늘 옳은 건 아니다

새 날 2017. 5. 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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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워터 파크 같은 놀이 시설에 가보면 휴대폰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는 물놀이객들의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방수팩을 사용하지 않은 채로다. 이는 스마트 기기의 방수 기능이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놀랍다. 덕분에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휴대폰과의 이별 없는 생활이 가능해졌다. 심지어 대중 목욕탕에 들어갈 때조차 휴대폰을 소지하는 이들의 모습을 간혹 보게 된다. 이쯤되면 천하무적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볼썽사납다.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고 윤택하게 해주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무선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이의 대중화 그리고 첨단 기기의 출현 등이 상호 시너지를 발휘하며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일반 대중들에게 판매되고 있는 휴대폰에 방수 기능을 탑재시킨 건 혹시 발생하게 될지도 모를 실수로 인해 물에 빠뜨리는 등 최악의 순간으로부터 기기를 보호해주기 위함이었을 테다. 그러니까 보다 정확히는 생활방수 수준의 기능이 요구됐던 터인데, 어느덧 이러한 수준을 뛰어넘는 기능으로까지 기술력이 발전한 셈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대폰 액정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한다. 길을 걸으면서도 시선은 온통 휴대폰에 쏠려있기 일쑤다. '스몸비'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이고, 그들만을 위한 길바닥 안내신호가 그려질 정도이니, 이제 이러한 현상이 우리에겐 일상이 돼버렸다. 대화를 하기 위해 찾은 카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각자 고개를 푹 숙인 채 휴대폰을 바라보는 모습은, 씁쓸하지만 흔히 보게 되는 장면이다. 심지어 직접 만난 상황에서조차 메신저를 활용하여 대화하는 게 더 편하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시대다.


통신의 발달로 온라인에 늘 연결되어있다 보니 그로부터 단절되는 일은 일종의 금단 증상을 불러일으킨다.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그 즉시 휴대폰을 켜고 온라인에 접속하여 이를 해결해야 직성이 풀린다. 세상 모든 지식과 궁금증은 이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대부분 해결 가능하다. 우리에겐 평소 빨리빨리 문화가 몸에 밴 터라 이 현상은 급가속을 밟고 있는 모양새다. 워낙 온라인 접속이 수월해지다 보니 모든 건 쉽게 그리고 빠르게 소비되기 마련이다. 켜켜이 쌓인 우리의 조급증은 온라인 접속을 통해 쉽게 해소 가능하며, 그러다 보니 이를 가능케 하는 도구가 우리의 손에서 벗어날 틈이 없다. 



가뜩이나 휴대폰 없이 생활하기 힘든 처지에,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면서까지 이를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는 이 놀라운 현상을 과연 바람직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의 삶을 더욱 피로하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하는 건 아닐까? 


5월 황금 연휴를 맞은 직장인들이지만, 휴가지에서 이른바 ‘카톡'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기사가 오늘자로 보도됐다. 단톡방 등을 통해 업무 지시를 내리는 문화가 확산되고, 스마트폰으로 업무 처리가 가능해지다 보니 휴가지에서도 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노라는 불만 섞인 반응 일색이다. 영화 '접속'이 등장할 즈음만 해도 온라인이 미지의 사람과 연결을 가능케 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하는 두근두근한 도구로 인식됐지만, 작금의 기술력은 오히려 과도한 연결 때문에 사람들을 늘 피곤하게 만든다.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건 접속이 되고 연결되어지는 이 놀라운 환경으로부터 적어도 물놀이를 하거나 목욕을 하는 지극히 사사로운 시간만큼은 이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마음 굴뚝 같은데, 뛰어난 기술력은 물속에서조차 기기의 자유로운 활용과 온라인 연결을 가능케 하다 보니 사람들을 휴대폰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도록 더욱 옭아맨다.


인류를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모면케 하기 위해 개발되고 발전한 기술이건만, 워낙 그 기능과 활용성이 뛰어나다 보니 되레 독으로 다가오기 일쑤다. 곧 닥쳐올 미래를 우린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바리스타가 해야 할 일과 계산원의 일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한 비율로 혼합하는 기계 및 키오스크가 대신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기에 충분하다. 아메리카노 같은 경우 단돈 900에 판매된다. 인류를 편리하게 하는 기술의 발전이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이러한 모습은 앞서 든 사례와 판박이다.


근래 유럽에서는 퇴근 후 업무용 메시지나 이메일 발송을 아예 법으로 막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제화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대선 주자들이 비슷한 공약을 꺼내들었다. 애초 도입 취지와는 달리 기술의 발전이 외려 우리의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에까지 침투해 들어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억지 연결을 강요하고 있는 모양새다. 물놀이를 하거나 목욕을 하면서까지 어딘가로 연결을 시도해야 한다는 건 지나치게 헛헛한 느낌이 아닐 수 없다. 기술의 발전이 늘 옳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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