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배우 김영애, 그녀로부터 얻는 영감

새 날 2017. 4. 1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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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영애 씨가 영면에 들었다. 췌장암의 재발 및 악화로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는 소식을 얼마 전 언론보도를 통해 접했었는데,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그녀가 출연한 작품을 마지막으로 접한 건 지난해 말이었던 것 같다. 원전을 다룬 재난 영화 '판도라'를 통해서다.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남편과 자식을 사고로 차례로 잃은 비운의 여성 역을 맡았던 그녀는, 원전과의 여러 악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와 원전을 철석 같이 신뢰하는 우직한 우리 이웃의 흔한 어머니상을 그리고 있다. 


이보다 앞서 개봉한 영화 '변호인'에서는 가짜 이적단체사건에 연루, 공권력의 고문 등 모진 고초를 겪게 되는 국밥집 아들의 어머니로 등장,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있는 시대의 아픔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녀가 '국민엄마'라는 애칭을 얻게 된 건 이렇듯 맡은 배역마다 우리 곁에 실제로 존재할 법한 진짜 어머니와 같은 연기자로서의 매우 실감나는 열연을 선보인 덕분일 테다. 


ⓒ중앙일보


그녀의 연기력엔 마치 혼이 깃들어있기라도 한 양 펼치는 연기마다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놓기 일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생전 인터뷰에서 “연기는 내게 산소이자 숨구멍 같은 존재”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녀의 평소 연기에 대한 열정을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주로 따뜻한 어머니의 역할을 맡아온 덕분에 그녀는 '국민엄마'라는 애칭을 얻고 있다. 하지만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에서는 우아하면서도 온화한 외양을 드러내고 있으나 본성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재벌 사모님으로 변신, 섬뜩하면서도 히스테릭한 연기의 정수를 선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그녀의 연기력엔 장르와 범주가 별도로 정해진 게 없을 정도로 폭이 넓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그녀를 둘러싼 일화는 우리를 절로 숙연케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에 열정을 드러냈던 그녀는 결국 자신의 유작이 된 KBS2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촬영을 위해 지난해 10월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주 1회 외출증을 끊어가며 병원과 촬영장을 오가는 강행군 끝에 촬영을 마무리한 사실이 알려졌다. 특히 촬영 당일에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싶다면서 투병으로 인해 전신에 고통이 수반되는 상황에서도 진통제를 투여하지 않은 채 촬영에 임하는 투지를 발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녀의 연기를 향한 열정은 이렇듯 언제나 한결 같았다. 그녀에게 췌장암이 최초로 발병한 건 지난 2012년의 일이다. 당시에도 김영애는 투병 사실을 숨긴 채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촬영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본격 치료에 들어간 건 드라마가 종영한 이후였다. 무려 9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고, 당시에도 그녀는 “쓰러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연기자의 기본 자세”라고 말하는 등 연기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연기자 차인표가 언급한 것처럼 고 김영애 씨는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끝까지 다했다. 이러한 모습만으로도 우리에겐 귀감으로 다가온다. 세간에 알려진 그녀의 투혼 과정은 감기만 앓아도 마치 죽을 병에 걸리기라도 한 양 쉽게 포기하고 물러서곤 했던 평소 나약하기 짝이없던 나 자신을 반성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녀가 걸어온 길이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되는 건, 나 또한 그녀가 처한 환경과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경우 죽을 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의연하게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연합뉴스


영화 '라라랜드'에서 주인공 미아는 남자 친구인 세바스찬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 주니까.."


난 미아가 언급한 것처럼 배우가 되고자 하는 무한 열정에 매료되어 그녀에게 쉽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이 영화가 황홀하게 다가왔던 건 단순히 오스카상에 빛나는 화려한 색감의 영상미와 청각신경을 즐겁게 하던 현란한 음악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미아와 세바스찬의 꿈을 향한 끝없는 도전과 일에 대한 무한 열정 때문이다. 


우리가 고 김영애 씨의 연기를 보면서 '국민엄마'란 애칭을 붙여주고, 그녀의 열연에 박수 갈채를 보내거나 때로는 눈물을 흘렸던 것도, 따지고 보면 연기자로서의 평소 그녀의 멈추지 않는 무한 열정과 투혼에 흡사 자석처럼 끌려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 김영애 씨의 영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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