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멍 때리는 데도 돈이 드는 과부하의 세상

새 날 2017. 2. 1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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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에는 애 어른이 따로 없다. 세계 최장급에 해당하는 노동시간은 어른들을 일에 치여 살아가게 한다. 중고등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창 뛰어놀아야 할 초등생마저도 학교를 파하자마자 이어지는 방과후 학습 순회로 매일 같이 살인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판국이다. 심지어 이제 간신히 옹알이에서 벗어났음직한 두 살 무렵의 유아조차도 사교육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통계 조사에 따르면 이의 비율이 35%를 상회한단다. 5세가 되면 무려 84%가 사교육에 참여한다. 놀라운 결과다. 


물론 이는 다른 국가와는 달리 우리 사회가 처한, 치열한 경쟁 구도 환경이 낳은 살풍경이다. 작은 땅 덩어리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고 볶으며 살아야 하는 삶이다 보니, 남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가게 하려는 부모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영유아 시기부터 아이들을 앞서의 방식으로 속박하는 건 과도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어르신들은 어떨까. 알다시피 노인빈곤율 OECD 1위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지는 한참 전의 일이다. 때문에 대다수의 노인들에게 있어 노후의 편안한 삶은 언감생심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시각에도 당장 입에 풀칠을 위해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이렇듯 그냥 일상 자체만으로도 정신 없이 돌아가고 있고,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야 하는 우리네의 힘겨운 삶이거늘, 정보통신기술의 눈부신 발달과 전 세계를 그물처럼 촘촘히 엮어놓은 통신망의 과도한 보급은 그나마 바쁜 틈 사이의 짜투리 시간마저도 좀체 쉴 틈을 주지 않는 눈치이다. 


길을 걷다가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심지어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산책로를 걷는 순간에도, 우리의 눈과 귀 그리고 머리는 온통 인터넷 상에 떠도는 온갖 이야기와 영상, 음악 그리고 게임을 향해 촉각을 곤두세우기 일쑤다. 지금 당장 확인하지 않으면 마치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아주 필사적이다. 대화를 위해 마주 앉은 사람들, 그러나 대화를 하기는커녕 각자 휴대폰 화면에 집중하고 있다. 회포를 풀기 위해 모처럼 만난 친구 녀석이거늘,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면서 시선이 엉뚱한 곳을 향하니 씁쓸함을 넘어 속에서는 천불이 올라온다. 


이렇듯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혁명은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어와 단 한순간도 이것이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조금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한 건 고작 20년가량에 불과하다. 이것이 처음 보급될 당시 붐을 확산시키고자 여러 이벤트가 시도됐던 기억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에서 오로지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 한 대만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방식의 리얼리티 쇼였다. 당시 이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불과 십수 년만에 모든 게 뒤집어졌다. 뇌를 쉬게 하자며 이른바 '멍 때리기 대회' 따위가 열리곤 한다. 온통 안온함과 편리함만을 안겨줄 것 같던 세상인데, 왠지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가뜩이나 극한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거의 전투를 벌이다시피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이러한 변화를 뒤쫓는 일이란 사실 많이 버겁다. 그냥 시류에 온몸을 맡긴 채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고는 있으나, '이게 아닌데' 하며 의문부호를 붙여야 하는 경우가 근래 더욱 잦아진 이유도 모두 이 때문이다. 


즉,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의 확산을 기대하며 리얼리티 쇼까지 벌였던 현대인들이 어느덧 지나친 속도감에 지쳐 그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2014년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멍 때리기 대회'의 규칙만으로도 현재 현대인들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3시간 동안 진행되는 해당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은 행위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휴대전화 확인, 졸거나 잠자기, 시간 확인하기, 잡담 나누기, 노래부르거나 춤추기, 독서, 웃음 등..


SBS 영상 캡쳐


근래에는 일정한 공간에서 숙박을 하며 멍 때리는 일에 오롯이 자신을 맡기는 상품마저 등장했다. 1박 2일 동안 특별한 교육이나 강의 같은 건 별도로 없으며, 휴대폰 사용에 대한 제한 따위도 없고, 멍 때리기를 위해 함께 참여하고 있는 타인의 행동을 방해하지 않는 게 이곳의 유일한 규칙이자, 산속에서 산책을 하다가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와 낙엽 밟는 소리 등을 자유롭게 음미한 뒤 각자의 방식 대로 멍 때리기에 열중하는 게 일종의 불문율이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석유의 발견이 인류의 급격한 문명 변화를 이끌어왔듯, 인터넷의 보급과 디지털 기술 역시 그에 버금가는 혁명을 이끌고 있는 와중이다. 불과 십수 년만에 인류를 서로 촘촘하게 엮어놓은 채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게 하고 있는 작금의 변화는 향후 우리의 삶을 어떠한 모습으로 변모시키게 될지 예측 불허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리거나 단순히 멍 때리기를 하는 데도 이제 비용을 지불해야 할 만큼 우리의 삶은 어느덧 과부하의 시대로 접어든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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