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아이들의 늦잠을 깨우지 않는 이유

새 날 2017. 2. 25. 21:46
반응형

난 아이들의 늦잠을 깨우지 않는다. 요즘은 방학 기간이다 보니 아이들이 더욱 제철을 만난 듯한 느낌이다. 인정사정 없이 늘어지도록 잠을 잔다. 깨우지 않을 경우 아침식사 거르는 일 따위는 다반사다. 계속 놔두면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어슬렁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나마도 배가 고프니 그럴 게다. 아이들 버릇 나빠지면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하는 분들이 계실 줄로 안다. 물론 나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 늦잠 자는 꼴을 보지 못 했던 사람 중 하나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이불을 전부 걷어내면서까지 아이들을 깨우곤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들의 자고 있는 얼굴을 문득 보고 있자니, 그 표정이 너무도 달콤하고 행복해 보이는 게 아닌가.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완전히 곯아 떨어진 채 잠 들어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심지어 평화로운 기운마저 전해진다. 지금은 방학이니 그렇지, 다시 개학을 하게 되면 아이들에게 있어 이러한 아침 늦잠은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다. 방학 때나 휴일만이라도 편하게 늦잠을 자게 해주자는 취지에서 이렇게 하는 측면도 없지는 않으나, 그보다는 나의 삶을 반추해 보니 저렇게 편안하면서 달콤한 잠을 자본 게 과연 언제적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부터다.


ⓒ뉴스1


현재는 학생이지만, 우리 아이들 역시 몇년이 지나면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될 테고, 그러다 보면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듯 본격적인 무한경쟁 속에서 자기 자신을 모두 태워버리는 삶을 살게 될 테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이 이를 대변한다. 언젠가부터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표현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는 알고 보면 참 무서운 말이다. 왜냐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녁시간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기에 이런 말까지 등장했는가 싶기 때문이다. 


특정 정치인이 자주 인용했다고 하여 그렇다기보다 워낙 우리의 삶이 팍팍하고 여유가 없다 보니 당연히 보장 받아야 할 권리마저도 그동안 보장 받지 못해 이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노라는, 아주 소박한 바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종의 화두로까지 떠오른 셈이 아닐까 싶다. 새벽밥 지어 먹고 별을 보며 등교하는 아이들이 다시 야간자율학습 내지 학원에서의 보충학습 때문에 별을 보며 하교하는 일이 보편적이다. 이렇듯 학창 시절엔 세계 최장 수준의 학습으로 인해 잠이 부족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한 뒤로는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 시간 때문에 저녁 시간을 찾지 못해 잠이 부족해지는 팍팍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나마 원할 때 잠을 마음껏 잘 수만 있다면 그래도 다행인 셈이다. 나이가 더 들어가면 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까닭에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이는 신체에 이상을 일으켜 이래저래 잠을 마음대로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젠가부터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은 찌뿌드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현상은 만성피로와 우울감 등을 증대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불면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왠지 수면의 질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은 제법 오래된 현상이다.


우리 아이들처럼 편안하고 깊은 잠을 과연 언제쯤 자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면 시간은 안타깝게도 OECD 꼴찌를 기록 중이다. 수면 부족은 삶의 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는 만성 피로를 불러올 수 있고, 우울증을 야기하며,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는가 하면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건강에도 독으로 작용한다. 고혈압, 뇌 심혈관 질환, 당뇨 등의 위험도를 높이며, 비만도도 커질 수 있다. 


ⓒ뉴스1


학생들에게는 예전부터 '3당5락', 일반인들에게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라는 식의 격문 내지 속담을 통해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잠을 줄여야 한다며 압박을 가해왔다. 잠을 많이 자는 행위를 죄악시해온 것이다. 물론 덕분에 압축 고도 성장이 가능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뒤늦게 나타나고 있고, 저성장 기조로 들어선 지 한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러한 가치관에 사로잡힌 채 잠을 줄여 삶의 질을 떨어뜨리면서까지 과도하게 일과 학습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최장의 노동 및 학습시간임에도 일의 생산성이나 학습 역량이 그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지나치게 스스로를 혹사시켜온 셈이다.


우리 아이들 역시 불과 몇년 후면 편하게 잠을 자고 싶어도 마음대로 잘 수 없게 되는 때가 올 테고, 그보다 나이가 더 들면 이른바 꿀잠은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다.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면서 취업절벽 시대가 도래하고, 노동의 안정성마저 무너지다 보니 경쟁은 예전보다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다. 앞으로도 꿀잠은 쉽지 않다는 의미다. 때문에 난 요즘 아이들의 늦잠을 절대로 깨우지 않는다. 아이들의 자고 있는 평화로운 얼굴을 보고 있자니, 우리 사회의 여건상 이 달콤한 수면을 과연 언제까지 누리게 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기도록 배려해주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난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다.


반응형